[사랑을 말하다] 너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얼굴을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오늘은 바람이 참 좋다고, 그렇게 웃으면서 걸어갈 수 있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정류장 긴 의자에 앉아있을 때
발 빝으로 바람이 불어왔어.
한참이나 발 빝을 맴돌며
낙엽들을 빙글빙글 돌리는 그 모습을
난 한참 동안 지켜봤어.
빙그르르..
'그래 시간을 돌린다면
너를 좋아하기 전으로 돌아가야지
아니 널 알기도 전으로 돌아가야겠어'
나는 버릇처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열심히 대답을 생각했고.
한밤중에 깨어나
고인 공기가 답답해 창문을 열면
캄캄한 밤공기를 뚫고 불어 들어온 바람
가슴은 또 이유없이 서늘해졌어.
'내가 잘할게. 그러면 되잖아'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내 목소리가
그런 나를 지켜봐야했던
네 한숨소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야'
너의 마지막 말이
그리고 정말로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던 네 뒷모습이
다 그 바람 속에 들어있어서
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아야 했어.
버스가 내뿜는 탁한 바람 속에도
머리 뒤에서 사납도록 불어오는 바람 속에도
엘리베이터에 문이 닫히는 순간
문 사이로 들어오던 짧은 바람 속에도
그 속엔 늘 너.
버스에 매연바람 속에서
너는 버스에 뛰어오르고
뒤에서 불어오는 큰 바람에
너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묶으며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너는 또 그 긴 한숨을 쉴까?
아직도 너 때문에 바람이 분다면
네가 보고 싶어서
꼭 네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럴 때마다 너 때문에 바람이 분다면..
네 한숨이 섞인 바람은
너무 쓸쓸하고 촉촉하니까
그럼 그저 그렇게만 말해야겠다.
고단한 저녁
집으로 가는 너의 지친 등 뒤로
다정한 바람이 불어주기를..
그러면 너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얼굴을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오늘은 바람이 참 좋다고
그렇게 웃으면서 걸어갈 수 있기를..
언젠가 내게
보여줬던 그 모습처럼.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