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感聲) 공감

허수아비 1, 허수아비 2, 허수아비 그 이후, 허수아비 4 [이정하 님의 시]

행복을찾아@ 2021. 1. 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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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1 / 이정하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허수아비 2 / 이정하

 

살아가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것이 또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허수아비는
매번 오라 하기도 미안했던 허수아비는
차마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한 곳만 본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허수아비, 그 이후 / 이정하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운다.

 

늙고 초라한 몸보다는
자신의 존재가 서러워
한없이 운다.

 

한낮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 있지만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목이 메인다.

 

속절없이 무너져
한없이 운다.

 

 

 

 

허수아비 4 / 이정하

 

요즘도 허수아비가 있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허수아비는 꼭

들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둘러보아라, 허수아비 아닌 사람이

여기 어디 있는지.

 

누더기 덕지덕지 기운 삶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다.

혼자 버티고 서 있어야 하리.

 

들판에만 허수아비가 있는 게 아니다.

세상 천지에 허수아비 아닌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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