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이야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난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인데..
그 사이에 그녀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 있습니다.
깍쟁이 같은 그녀가 바보가 된 것처럼 해죽해죽 웃더니..
생전 하지도 않던 말을 합니다.
고맙다는 둥 사랑한다는 둥...
더 이상한 건
그녀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는 겁니다.
원래 그녀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간다고..
열시만 넘어도 늦었다고 난리를 치곤 했거든요.
택시를 타는 걸 워낙 무서워해서요.
그렇다고 내가 데려다준다면 그것도 싫대요.
택시비가 아깝다고 그러면서 말이죠.
나야 뭐..
그녀가 이렇게 많이 웃고 나랑 오래 있어주고 그래서 좋긴 한데..
영문을 몰라서 좀 어리둥절해지네요.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왔다 가기라도 한 건가?
그 여자 이야기..
그 사람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탁자 위에 있는 지갑을 열어봤어요.
" 많이 낡았네.. 이번 생일 땐 지갑 사줘야겠다."
지갑엔 돈도 별로 없더라고요.
자기나 나나 서로 용돈이 뻔한데..
맨날 자기가 낸다고 고집부리더니...
그리고 지갑 한쪽에 꾸깃꾸깃한 메모지 한 장..
거기엔 숫자들이 쓰여 있었어요.
나 52 6542, 사 55 3994, 파 34 8632..
마지막에 적혀 있는 번호를 보니깐
그 숫자들이 뭔지를 알 수 있었어요.
그건 바로
어제 내가 탄 택시의 번호였거든요.
밤에 택시 타는 거 무섭다고
헤어질 때마다 징징거렸는데..
'내가 출발하면, 뒤에서 이렇게 차 번호를 적고 있었구나.'
지갑을 제자리에 놓는데 눈물도 나고,
행복한 웃음도 나고...
그래서 오늘은 좀 더 같이 있다가,
택시 타고 집에 가려고요.
내 뒷모습까지 다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 걱정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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