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던 순간부터
나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리고 남편의 통곡소리와 함께 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그때 내겐 '이대로 한 줌 재가 되어 아들 곁에 뿌려지리라.'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즈음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께서 내 앞에 서 계셨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친정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나를 방에 들게 하고
잠시 나가시더니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셨다.
"보약이다. 너 오면 맥일라구 밤새 다려 논거. 어서 마셔라."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찌 보약을 먹으라는 지 아버지가 야속했다.
나는 앞뒤 생각도 않고 약사발을 거세게 밀쳐냈다.
약사발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셨다.
" 왜 이러는겨! 너도 니 아들 따라 죽을겨?
너한테 그놈이 가슴 아리고 기막힌 자식이면 이 아비 한티는 네가 그런 자식이란말여..
이 아비 맘을 그렇게도 모르겠는가? "
아버지의 목소리는 젖어들고 있었다.
'아! 자식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만큼 당신도 함께 그 고통을 겪고 계셨구나.'
나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무너지듯 쓰러져
끝도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를 보낼 때에도 모든 게 내 죄인 듯 싶어 한 방울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 앞에서 오래도록 목 놓아 울었다.
그날부터 나는 얼마간 잠만 잤는데..
잠결에도 군불 지피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일으켜..
벽에 기대 앉혀 놓고, 때마다 정성껏 달인 보약과, 밥을 먹이셨다.
그리고 내 입에 밥술을 떠 넣으실 적마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똑같은 말씀을 나지막이 중얼거리셨다.
" 너무 애달파 말그라. 시상엔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게 있는겨.
그 간 자식 살리겠다고 월매나 애간장이 탔겠냐.
얼렁 세월이 흘러야 네 맘이 편해질 것인디.. 얼렁얼렁."
아버지는 그렇게 슬픔 속으로만 빠져드는 나를 붙들어..
따뜻이 보듬으셨다.
늘 변함없는 자상함으로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고,
지친 우리들의 편안한 쉼터가 돼 주셨던 아버지...
당신은 저의 영원한 고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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