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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감동글] 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 (눈물나게 감동적인 이야기 - 이런 사람들이 성공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by 행복을찾아@ 2021.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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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숲 #67450번째 외침:

 


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

 


나는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내가 5살이 되던 해, 엄마가 죽었다.

 

빠듯했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식당 일을 나가고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였다고 한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일용직 노동자

소위 말하는 노가다꾼인 아빠는

8살배기, 5살배기 딸 둘을 혼자 키웠다.

 

우리를 없게 키우지 않기 위해

아빠는 피눈물을 흘렀지만, 애석하게도

아빠의 피눈물의 대가는 크지 않았다.

 

그냥 나와 내 언니와 아빠,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너무나도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주같은 구두를 신고,

누군가가 잔뜩 신경 써 준 머리를 하고

등교했던 내 짝의 외모에 홀려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집에 놀러갔다.

그 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

집에 신선한 과일이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단 것을,

집에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단 것을,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언니는 집이 가난했기에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해 상고를 갔다.

빨리 취직하고 싶다나.

 

나도 당연하게 언니처럼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꿈이란게 없었다.

꿈을 꿀 형편이 아니었기에.

 

학교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그냥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의 재능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줄까 하는 기대감에 들었다.

 

결과는 전교 1등이었다.

내 재능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라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온 첫번째 순간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보낸 나는

지역에서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고등학교에 갔더니 성적이 팍 떨어졌다,

이런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었다.

첫 고등학교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다.

 

자부심이 컸다.

학원 하나 안 다니고,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

야금야금 사서 전교 2등을 했다는 게.

계속 공부하면 되겠다,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아빠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나 하나 일을 안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엄청 울었다.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때까지 울었다.

언니가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해줬다.

어떻게든 언니가 돈 벌어올 테니,

너는 공부 해서

개천에서 용 한 번 제대로 나 보라고.

 

언니가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으로 공부했다.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을 샀고

언니가 보태준 돈으로

인터넷 강의 무제한 수강권을 샀다.

힘들어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는 고3을 보냈다.

나에겐 두 번의 기회는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리고 아빠가 싸준 기름 범벅

김치볶음밥을 싸들고 수능장으로 향했다.

 

수능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

채점을 할 때 까지 계속 다리를 떨었다.

언니랑 아빠가 나를 위해 희생해준 것이

아무 소용 없어질까봐.

 

심호흡을 하고 채점을 했다.

국어 2점짜리, 지구과학 2점짜리에 X표가 쳐져있는

가채점표를 붙들고 온 가족이 목놓아 울었다.

 

아빠가 엉엉 울며 언니와 나에게 사과했다.

언니와 내가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백 한 번 못 데려다 준 못난 애비 밑에서

잘 커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연세 의대생이 됐다.

현역 정시 연의라는

여섯 글자가 참 대단한 것이더라.

 

근 세달 열심히 과외해서 밀린

월세 300을 갚고도 400만원이 남았다.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언니와

아빠에게 반반 나눠 줬다.

 

그리고 오늘, 아빠가 아웃백을 사 줬다.

그것도 4인 랍스터 세트로.

언니와 내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와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는 또 울었다.

 

아빠가 울어서 나랑 언니도 또 울었다.

울면서 4인 세트의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배가 찢어질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아빠와 언니의 모습도 처음이다.

정말 좋아보였다.

 

인생의 한 줄기 빛이 열린

우리 모두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다짐했다.

 

우리 아빠,

우리 언니에게 생일이 아니라,

새해 첫날이 아니라,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먹고 싶으니까..

 

아웃백에 가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해 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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