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청승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이 무식한 더위도 한순간이고,
곧 데일 것 같은 뜨거움도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계절도 이런데
당신이라고 다를 것 있겠느냐.' 는
믿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내가 등에 지고 있는 당신이
못 견디게 좋은 날엔
창문을 열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텅 빈 하늘을 가르고 떨어지는 유성우가
널 닮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고,
어떤 날엔 당신에게 '무엇'이 되고 싶어서
나를 정의해달라 말한 적도 있었다.
딱히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죄다
당신에게 남김없이 쏟아내서
이젠 나조차도 내가
무엇인지 의미를 상실했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질 않으니까
내가 마땅히 사랑한 당신이
나를 좀 알려주길 바랐다.
적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게 되면
언젠가는 꼭 귀찮아졌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받는 것에 익숙해졌고,
주는 것이 낯설어졌다.
날이 갈수록 무감각해졌고,
사랑을 표하는 말엔
고맙다는 일갈 하나 없이
"그래, 그렇구나."
이따위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건 단언컨대 나의 잘못이다.
타인의 감정을 매만지지 않은 채로
나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주위에서 사람을 하나하나
쳐내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익숙해지려는 순간엔
내가 이 시람을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만남을 이어가려고 노력했으며,
그가 어떻게 나를 대해주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에게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은
그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동시에 다뤄야만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만남에서
행복으로 도출되는 각자의 답이 있었고,
그 답은 다 달랐다. 어려웠다.
일종의 체력전이다.
오래달리기 같은.
익숙해지면 잘 해낼 수 있을까.
그것 또 확신하기 어려워서
애석할 따름이다.
인생에서 쉬운 관계는 없었다.
단 한 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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