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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사랑글, 이별글] 중앙대학교 대나무숲 여학생의 흙수저 금수저 이별 이야기(나는 사랑하는데 오빠는 부끄러웠다고 하니, 그 말을 듣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오빠. 나는 미쳐버릴것 같아.)

by 행복을찾아@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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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래 난 오빠 말대로 금수저가 맞아.
오빠는 오빠 말대로 흙수저야.


근데 나는 아직도 그게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인지 모르겠어.


나는 오빠 눈이 좋았다.
얘기를 하다가 실없이 웃을 때,
곱게 접히는 그 눈끝이 좋았어.


가끔 피곤할 때 일부러 웃기려고
두꺼운 쌍커풀을 만드는
그 유쾌함도 정말 좋았다.


난 오빠 어깨도 좋았어.
무거운 장비를 들다가 났다는
그 한 줄짜리 긴 흉터가
난 뭐가 그렇게 멋졌는지 모르겠어.


카페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리는 그 손가락이 좋았다.
음악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오빠 손톱이 테이블에 부딪치는 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나.


비라도 오는 날엔
말없이 멍하니 창밖을 한참 보는
그 맹함도 너무 좋았어.


그 옆에 다가가 기대앉노라면,
온 세상이 아무 의미가 없고,
오빠랑 나만 의미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어.

 

 

 


23살과 27살이었지, 우리.
서로가 없는 새 어느새 우리가
24살과 28살이 되었네.


28살...
내 주변의 사람들은 연봉을 말하고
타는 차를 말하고
사는 집을 말하는 나이인데,
아직도 홀로 20살의 눈을 하고
꿈을 말하는 오빠가 정말 미치게 멋있었다.


이뤄놓은 것 없어도 쉬지 않고 꿈을 쫓아온
그 걸음들이 나는 너무 눈이 부셔서.
나는 가끔 오빠를 보다 보면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 같은 때가 많았어.


술 한 잔 마시고 터벅터벅 걷듯이
말을 하는 오빠의 낮은 목소리에는,
나는 거기에
인생을 걸어봐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 앞에 무슨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는 별 의미 없고,
그 목소리만이 나에게 의미 있을 것 같았어.


그래. 우리가 다르긴 했지.
먹어온 것, 입어온 것, 살아온 곳,
일상에서 하는 고민들, 주변 사람들,
생각하는 루트들, 통장의 잔액들까지.
다른 건 많았어.


그런데 그런 차이들은 나한테는 그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맛이 다르고,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고,
나는 걷는 게 좋고, 오빠는 앉는 게 좋고.


그 정도의 차이들과
다를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가진 것이 문제가 된다면.
다 버리고 가면 받아줄지도 궁금해.
내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오빠를 부끄럽게 했었다면.
그 정도 부끄러움은 감수할 정도로
나를 사랑해 줄 수는 없었는지 궁금해.


지금은 어때.
그래서 날 떠나서 이제는 좀 편해?


오빠.
난 아직도 왜 내 주머니에 든 것들이
오빠를 답답하게 했는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차라리 아주 못돼 처먹어서,
내 주머니를 탈탈 털어 쓸 작정으로
붙어 있어주기라도 하지 그랬어.


나는 오빠.
미쳐버릴 거 같아.


나는 사랑하는데.
오빠는 부끄러웠다고 하니


그 말을 듣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오빠.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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