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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이슈가 되었던 슬픈 사연 (가정을 버린 아빠의 죽음)

by 행복을찾아@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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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었다.


난 아빠랑 떨어져 살아서
초등학교 이후로 본 적이 없다.


몇 년 만에 제일 먼저 본 얼굴이 영정이라니.
부검할 땐 고모부가 아예 못 보게 막았다.
의사가 여름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고 했다.


여름이었으면 사체가
어떻게 됐을 지 모른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염할 떈 삼촌이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는데
내가 부득부득 우겨서 들어갔다.
그때 안 보면 영영 못 보니까 들어갔는데
솔직히 아직도 후회한다.


그냥 어른들 말대로 들어가지 말 걸 그랬어.
시체는 정말 무섭다.
보이는 것도 무섭고 촉감은 더 무섭다.


보다 다 파이고 눈두덩이에도 살이 없고
원래 동그란 얼굴형이었던 거 같은데
살이 다 빠져서 무슨 해골처럼
귀랑 입에 허연 게 꽉 채워져 있는데
뭐냐고 물어보니까 몸 구멍들에
솜 채워 넣는 거라고 하더라.


눈에 피딱지 있고 살짝 어그러졌길래
물어봤더니 눈뜨고 죽어서
억지로 감기느라 그렇게 됐대.
참 웃기다. 자다가 죽어놓고 눈은 뜨고 죽었다.


관 닫을 때 한 번씩 안아주고
가족들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하라는데
고모랑 할머니랑 사촌오빠랑 삼촌이랑
안아주고 다들 뭐라고 하는데
난 한 마디로 못했다. 그냥 할 말이 없더라고.
제대로 만지지도 않고
그냥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장례식 하는데 친척들 제외하고
아빠 지인들은 다섯 명 밖에 안 왔다.
대체 살아생전에 어떻게 하고 산 거야?
어떻게 살았길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럴까?
친구들 안 부르려고 했는데 너무 휑한 게
민망할 지경이어서 그냥 불렀다.


아빠 기억나?
아빠가 옛날에 나보고 내 성격 못돼 쳐먹어서
친구들 하나도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근데 아빠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 중에
반이 내 친구였어. 참 아이러니하지?


화장이 끝나고 아빠 집에 들러서
짐을 가지러 갔는데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다.


찬장 텅 비어있고 먹을 건 하나도 없고
옛날 노트북에 배터리 없는 핸드폰 두 개
핸드폰에 배터리도 안 껴져 있는데
충전기엔 연결돼있고 제정신이 아니었단 거지.


고시원 사장이 USB 아빠 거라고 주고 가서
노트북에 꽃아 서 열어봤더니
이력서가 두 장 있었다.
그 몰골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산송장이
그래도 살아보려고 이력서를 썼던 거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자격증 책도 있던데
깨끗하고 메모지도 변변치 못해서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메모지에
자기 필체로 이것저것 써 놨는데
그 메모지가 사람 마음을 후벼 파데.
참 마지막까지 여러 사람 고통스럽게 하고 간다.


우리 아빠는 폭력가장이라
술 먹고 때리고 다 깨부수기 일쑤에
당한 게 정말 많아서
아빠한테 연락 왔을 때 차단하고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정말로 죽을 줄은 몰랐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내가 그따위로 말해서 그렇게 된 걸까.


추합 발표 전에 아빠랑 싸워서
추합 붙고 나서 말 안 했는데
그래서 입학식 당일날 엇갈렸다.


입학식 날 아빠는 다른 대학 앞에서
꽃 들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
결국 못 만나고 갔다고 아빠 친구가 말해주더라.
당연히 못 만나지 난 그날 거기에 없었으니까.

 

 

 

 

참 마지막까지 웃긴 사람이다.
나한텐 항상 실망스럽다. 잘못 컸다.
못돼먹었다. 싫은 소리만 해댔으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붙었다. 멋지게 자랐다.
너무 잘 컸다고 칭찬하고 다녔단다.


너무 잘 크지 않았냐고
사진도 보여줬다는데
내가 사진 안보 내줘서 그거 다
카톡 프사 캡처한 거더라고.
아 진짜 환장하겠네.


그냥 얘기할 걸 그랬다.
대학 어디 가는지 말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사진도 그냥 보내줄 걸 그랬다.


만나러 앞에까지 찾아왔으면
한 번이라도 볼 걸 그랬다.
아니 그냥 보내는 카톡
답장이라도 할 걸 그랬다.


근데 웃긴 건 눈물이 안 나온다.
친척들은 그렇게 울던데
나는 좋은 기억이 없어서 눈물이 안 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 맞은 기억밖에 안 나.
새벽에 도망간 기억밖에 없어.
도대체가 아무리 짜내도
좋은 기억이 나지를 않아.
추억할 게 없어서 눈물도 안 나오는
꼬락서니가 진짜 비참하다.


그래도 고모가
너네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이미 간 사람이니 마음에 담아둔 거 있으면
용서하라고 불쌍한 놈이라고 했다.


그래 아빠 사과받은 걸로 할게.
다 용서할 테니까 미련 없이 가.
거기서는 평생 갖고 살던 열등감 자괴감
다 버리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살아.

 

 

 


나는 당신을 닮아 속이 좁아서,
당신을 이해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지금도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몇몇 행동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물어볼 수도 없다.


그래도 나는 당신을 이해해 보겠다.
죽을 때까지 사과 한 번
안 한 당신을 납득하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당신을 용서하는지
당신은 절대 이해 못하겠지만,
내 유년시절을 지옥으로 만든 당신을 용서하겠다.
당신 때문에 골병이든 엄마를 대신해 용서하겠다.


내가 당신을 용서하며
당신이 했던 짓을 곱씹는 이유는
그때가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때를 미화하는 추잡한
신파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외면하고 치우면 결국
썩어 문드러지기 때문에
마주해 없애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용서하길 바란다.


당신이 보낸 선물을 죄다 갖다 버린
내 옹졸함을 용서하고
연락이란 연락은 죄다 무시하고
욕설이나 보낸 내 경솔함을 용서하고
마지막 가는 길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한 비겁함을 용서해 줘.


그리고 다음이 있다면 부모 자식으로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도 만나지 말자.
아빠랑 나는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으니까.


나는 이제 아빠를 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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