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12月10日#24023번째포효
겨울이 다가오면
너한테서 나던 은은한 담배냄새가
너와 함께 피어 오른다.
소개팅으로 만난 넌,
처음부터 나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했다.
넌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우리가 들리던 모든 가게의 종업원들에게
꾸벅꾸벅 감사한다며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내가 말할 땐
시선을 한 번도 흐트리지 않고
나만 바라봐주던 모습이,
내 고민에 마치 네 일인양 하루종일 고민해
조심스레 해답을 내놓는 모습이 좋아서
너의 손을 잡았었다.
넌 사귀고 나서도 그 모습을
단 한 번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너가 어쩌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담배얘기로 돌아가자면,
난 솔직히 흡연자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빠도, 오빠도 담배를 피우지만
비흡연자인 내 입장에서
그 담배냄새가 늘 좋을린 없었다.
너도 당연히 담배를 피우지 않을거라
생각해 물어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너가 흡연자란 사실을 알게 된건
너에게 비밀로 하고
너의 학교에 놀러갔을 때였다.
너가 공부하던 열람실이 어디냐 물은 뒤,
왜 묻냐는 너의 질문에
이리저리 둘러댄 뒤
너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몰래 건물 앞으로 가던 중이였다.
밖에 있던 흡연구역에 가만히 서서
담배를 피우던 너가 선명하다.
겨울철 입김과 섞여
공중으로 흩날리는 담배연기가
또렷하게 보였다.
너에게서 한 번도 담배냄새를 맡지 못했고,
라이터조차 본 적이 없는데.
솔직히 털어놓자면 그건 나름의 충격이었다.
담배를 다 피운 넌,
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습관처럼 주위를 쓱 둘러보다
나와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넌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그대로 얼음이 돼버렸다.
카페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 너가
밉다기보단 귀여웠다.
어떻게 나랑 만날 땐 참았냐고,
냄새가 나지 않았냐 물었다.
넌 되게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널 만나는 날
담배를 피우고 가?'
넌 날 만나는 날엔
아침부터 나와 헤어질 때까지
절대 담배를 손에 대지 않았다고 했다.
어쩌면 너가
그토록 좋아하던 향수 때문에
어제의 네 담배냄새 역시
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꽤 오랜 시간동안 흡연자였던 너가
참았다는 말에 나름 기특했다.
한 가지 더 안 사실은,
넌 무조건 왼손으로만
내 손을 잡았다.
오른손으로 담배를 태우는 네 습관때문에
혹시라도 내 손에 냄새가 묻어날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쩔쩔매는 네 모습도 역시 귀여웠다.
끊겠다고 다짐하는 너에게
굳이 그러지는 말라했다.
금연하겠다고 고생하는 아빠와
오빠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너는
절대 나에게 담배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1년을 넘게 만나는 시간동안
어떻게 그랬는지 신기하다.
문득 네 담배냄새가 궁금하면
너랑 만나기로 하지 않은 날
몰래 널 찾아가면 됐다.
그리고 너의 오른손을 잡으면 됐다.
넌 화를 내곤 했지만
계속 징징대는 날 말리진 않았다.
네 손에서,
코트 소매 끝에서 나는 그 은은한 담배항은
널 생각하게 했고
날 위한 네 노력을 생각나게 했다.
실제로 넌 날 만나는 동안
굉장히 흡연량을 줄였다고도 했으니 말이다.
특히 소매 끝에서 나는 향수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이면 뭐랄까,
섹시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렇게 날
두근거리게 하는 냄새가 났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종일
네 오른손을 잡고 다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손에서는 너의 향수와,
체취와, 그 담배냄새가 알맞게 섞여
계속 코를 킁킁거리게 했다.
그럼 너가
마음 속으로 찾아오는 듯 했다.
키스를 하면 바로 냄새가 난다는데,
몰래 찾아온 날엔
넌 절대로 입을 맞춰주지 않았다.
그 다음날 만나면 누구보다
달콤하게 입을 맞춰줬기 때문에
괜찮긴 했다.
두 번의 겨울을 같이 보낸 후
우리는 벚꽃이 질 때 같이 헤어졌다.
벚꽃이 땅으로 떨어질 때
우리관계 역시 같이 사그라졌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계속 용서를 구했지만 넌 고개를 저었다.
그 이후로 우린 연락을 하진 않았다.
대신 담배를 피우는
내 친구, 동기, 선배, 후배, 가족을 보면
너가 몰래 생각났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독한 연기가 신기했다.
너에게서 나는 냄새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몇 달 전에는 호기심에
친구에게 담배를 빌려 처음으로 피워봤다.
켁켁거리는 기침과 함께 담배를 내던졌다.
넌 이렇게 아픈걸 뭐하러 피우는 걸까.
또 궁금해져 괜시리 눈물이 났다.
얼마 전엔 친구의 강요로
소개팅에 나갔다.
너가 그랬듯 상대는
날 꽤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 상대는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메뉴판을 늦게 가져왔던 그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늘 두 손을 모아 카드를 건넸던
너와 달리 한 손으로 카드를 툭 던졌다.
무엇보다 밥을 다 먹어갔을 때
그가 자랑스럽게, '아, 전 흡연 안해요.
나름 자랑거리에요.
하하' 라며 멋쩍게 말을 건넸더니
난 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페를 가자는 그에게
죄송하단 말을 건네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흡연자를 찾는다는 건 아니었는데,
담배를 싫어하는데, 왜 그랬을까.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던져본다.
겨울이 가득해,
하- 입김을 불어보면 너처럼
나도 입에서 연기같은게 나온다.
넌 여전히 담배를 피울까
궁금하기도 하다.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중에 혹시 너가 있을까,
넌 우리 학교가 아닌데도
혹시 놀러오지는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그 쪽을 쳐다보게 된 것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너가 보고 싶다.
향수와 섞인 네 담배냄새가 그립다.
내 손에서는 이제
핸드크림 냄새만 나는데,
너의 향이 같이 섞였으면 좋겠다.
가끔 네 꿈을 꾸면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너가
사라지곤 한다.
그럼 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곤 한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낸 것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난 오늘
핸드폰을 키고 너에게 연락할거다.
이미 할 말은 생각했다.
2016年12月29日#24648번째포효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없었다.
너에게 보낼 연락은
이미 생각을 해놨었다.
헤어진 전 연인 사이에
가장 흔한 말, 잘 지내? 라는 그 세 글자가
어찌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조마조마한 내 마음을 비웃듯이
넌 5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답장을 해줬다.
'나야 잘 지내지, 넌 요새 뭐하고 지내?'
내가 뭘 하고 지내는지는 사실
너무 진부해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대외활동 하나,
인턴 준비하는 것 하나,
그 외에는 서서히 다가오는
졸업에 대한 고민.
그런데 왠지 너가
나의 근황을 물어봤을 때,
난 그 순간만큼은
너무 바쁜 사람이 돼버렸다.
만나서 말하자고,
카톡으로 하기엔 너무 할 말이 많다고.
난 그렇게 너에게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한거다.
넌 나에게 언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 사실은 너에게 연락을 보낸 날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아무런 일정이 없었다.
사실 이것도 거짓말이겠지,
어떤 일정이 있었든 널 다시 보고, 다시 듣고,
다시 맡기 위해서는 취소했을테니까.
'미안한데, 나 크리스마스에만 시간이 돼.
너 약속 없으면 그 날 한 번 볼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연인 관계였을 때는
20분을 넘지 않던 답장이,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는 1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너에게 답장이 왔다.
'그래, 나도 그 날 마침 약속이 없어.
우리 자주 가던 네 동네 카페에서 보자.'
그 날 하루종일 내 마음에는
너의 향기가 벅차올랐다.
그 날 꿈에서는
너가 담배연기 사이로 사라지는게 아니라
담배연기를 헤치고 나에게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너가 날 볼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그 달콤한 향수냄새를 흘리며 반겨줬던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늘 자주 갔던 카페에서 만났다.
크리스마스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가 될 그 날,
손을 마주 잡지는 않았지만
테이블을 마주보고
너의 얼굴을 내 눈에 담았다.
넌 여전히 그 향수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인,
날 치명적으로 파고들어 결국엔
눈물을 머금게 하는 그 향기를 풍겼다.
갑자기 눈물을 한 방울 뚝- 하고 흘린 날 보고
넌 쩔쩔매며 휴지를 가져와 나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하고 나서야
나는 진정을 하고 너와 근황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한 질문은 뻔했다.
'아직도 담배 펴?'
'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습관이라는게 무섭더라고.'
그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난 결국 너에게 말을 꺼냈다.
내가 그 때 저지른 잘못,
이제는 용서했냐고.
이제 날 봐도 밉지 않냐고.
또 고개를 저을거냐고.
넌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널 완전히 용서했다면 그건 거짓말일거야.
그런데, 처음에는 그 거짓말조차 하기 싫었는데
이제는 거짓말쯤,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그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 한 번 더 보겠다는건가,
더이상 고개를 저을 일이 없다는걸까.
우리는 너가 그 말을 하고 난 이후로
아무 말도 없었다.
이미 커피는 사라진
얼음잔의 얼음만을 뒤적거릴뿐.
11시가 넘는 시간까지 우리는
1시간 넘도록 얼음과 같이
생각을 휘저었을 것이다.
서로의 눈만 봐도 고민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는 사이니 말이다.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을 꺼낸건 너였다.
난 미련을 가득 묻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넌 문득 내 이름을 부르고
몇 초동안 말이 없었다.
'우리 1월 1일에 또 볼까?'
난 튕기는 것 없이,
당기는 것 없이 너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보자고,
우리 그 날은 둘 다 좋아하는
초밥을 먹으러 가자고,
라라랜드를 보러 가자고,
술도 한 잔 하자고,
난 그렇게 10초동안 너와
1월1일에 할 계획을 세운거다.
넌 살짝 웃더니 나에게
일찍 만나야겠다고 말했다.
우린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난 그날 밤 또
똑같은 꿈을 꾸었다.
넌 연기를 헤치고 나와
날 꽉 안아주었다.
넌 내 귀에 대고 용서하겠다고,
이제 우리 다시 사랑해보자고,
담배 역시 절대 널 만날 때 피지 않겠다고.
난 그만 너 품안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그 다음날 실제로 내 눈에도
약간의 눈물이 아롱거렸다.
그런데 그 눈물은
달콤하고, 행복했다.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맛보지는 못했다.
대신 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너의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는 선물,
너가 날 만날 때 담배를 피지 않는
그 배려를 느낄 수 있는 선물,
내가 다시
네 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선물.
우리는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소개팅이 끝난 후 너가
쭈뼛쭈뼛 영화를 보러가자고
말을 건넨 것처럼,
내가 너의 열람실을 몰래 찾아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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