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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나는 주말을 반납했을 뿐이었지만 우리 엄마, 한평생 쉬지도 못하고 떠날까 두려워.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24136]

by 행복을찾아@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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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2月13日#24136번째포효

 

 

엄마, 있잖아.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철든 딸이 아니야.

 

나 실은 그냥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야.

 

고등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도
그렇게 안 하면 가난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 같아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공부 밖에 없어서

그렇게 이 악물고 한 거야.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내 성적표는
꼭 가고 싶은 대학과,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발버둥이었어, 엄마.

 

엄마, 미안해.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착한 딸이 아니야.

 

내가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단 하루의 주말도 없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기특한 생각에서 한 게 아니야.

그냥 나도 평일에는

부유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어.

 

엄마는 부자가 아니잖아.

나 용돈주려면

다른 것들을 줄여야 하잖아.

 

엄마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게 없는데.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삶을
좀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어.

부자처럼 살고 싶어서.

 

근데 나 한 번도 그렇게

못 살아봤어, 아직도.

주말을 주말답게 보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야.

 

 

엄마,

나는 주말을 몽땅 반납해도,

아직도 가난해.

 

엄마, 미안해.

나 사실 가난이 너무 싫어.

 

가난 덕분에 공부해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싫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인정하는 것도 창피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푼돈을 모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고

 

매달 40만 원 씩

꼬박꼬박 받는 용돈이 적다고

투정부리는 친구의 말도 싫어.

 

아니, 부러워.

아직 철이 덜 들었나봐.

 

엄마, 기억나?

내가 어릴 때 물어봤잖아.
우리 가난하냐고.

 

엄마, 아빠가 맨날

돈 때문에 싸우는 거 보고
고작 열 살이었던 내가,

다 알면서 물어봤잖아.

 

우리는 집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식탁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데 우리 정말 가난한거야?

라고 물어봤던 것 같아.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3일은 생각하고 물어본 거야.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

 

근데, 다 빚이야.

우리꺼 아니야. 라고

엄마가 대답했던 것 같아.

 

열 살짜리 내가,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나는 걸 보니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돈 앞에 눈치만 늘고,

돈 앞에 작아지고,

모든 것을 다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한 게.

 

 

엄마,

나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돈 없어서 한두 푼에 쪼잔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어.

왜 난 기꺼이 베풀지 못할까.

왜 이렇게 내어주는 것에 야박할까.

 

돈 앞에서 머리를 굴릴 때마다,

와, 나 진짜 속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욕했어.

 

그때마다 나는

다시 가난을 원망했어.
내 그릇이 작은 게

다 가난 때문인 것 같았어.

 

사실 지금도 참

많은 것들을 가난 탓으로 돌려.

 

근데, 맞잖아.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잖아.

돈이 많으면,

나 주말에 늦잠 잘 수 있잖아.

 

사장님 눈치,

손님 눈치 안 봐도 되잖아.
메뉴판을 받으면 메뉴보다

가격을 먼저 보지 않아도 되잖아.

 

가끔은 친구들한테 한 턱 내고

생색도 내보고 싶고,
나를 위한 선물도 사고 싶고,

 

한평생 나를 위해 희생한 우리 엄마,

좋은데도 데려가고 싶은데.
돈이 많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엄마,

나 가난은 싫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아.

 

우리가 부자였다면,

그건 엄마가 부자인 거잖아.

어차피 그건 엄마한테

무임승차하는 거니까.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엄마는 가난해도 내 엄마잖아.
나만큼이나 엄마도

휴일 없이 열심히 살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가난을 투정할 수 있겠어.
힘들지만 나를 보면 힘이 난다는,

그런 엄마 앞에서.

 

엄마, 나 나중에

진짜로 부자가 되면 말야.
아, 나 말고, 우리 말야.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우리가 부자가 되면 말야.
그때는 꼭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면서 투정부리고 싶어.

 

이렇게 부자가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하필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부잣집에 태어난 친구를 보며,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고.

 

내 청춘이 다 지나도록

한 번의 주말 없이 사는 게 서러웠다고.
그렇게 울면서 투정부리고 싶어.

 

근데 아직은 아니지, 엄마?
나는 아직 좀 더 가난해야 되잖아.
아직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잖아.
때가 안 된 거잖아.

 

 

근데 좀 무섭네.
우리 정말 열심히 살면

부자 될 수 있는 거 맞지?

 

나 무서워.

우리가 부자가 되었을 땐,
엄마가 너무 늙어 버렸을까봐.

 

나는 주말을 반납했을 뿐이었지만,
우리 엄마,

한평생 쉬지도 못하고 떠날까 두려워.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

내가 아주 오래 오래 생각해봤는데.
여기 적은 엄마한테 하려던 말들.
죽을 때까지 절대 엄마한테 말 안 할래.

 

그냥, 철든 딸,

착한 딸, 기특한 딸로 남을래.
난 주말 없어도 돼, 엄마.

 

괜찮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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