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年12月13日#24136번째포효
엄마, 있잖아.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철든 딸이 아니야.
나 실은 그냥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야.
고등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도
그렇게 안 하면 가난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 같아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
공부 밖에 없어서
그렇게 이 악물고 한 거야.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내 성적표는
꼭 가고 싶은 대학과,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 발버둥이었어, 엄마.
엄마, 미안해.
나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착한 딸이 아니야.
내가 수능이 끝난 시점부터
단 하루의 주말도 없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기특한 생각에서 한 게 아니야.
그냥 나도 평일에는
부유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어.
엄마는 부자가 아니잖아.
나 용돈주려면
다른 것들을 줄여야 하잖아.
엄마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게 없는데.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삶을
좀 살아보고 싶어서 그랬어.
부자처럼 살고 싶어서.
근데 나 한 번도 그렇게
못 살아봤어, 아직도.
주말을 주말답게 보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야.
엄마,
나는 주말을 몽땅 반납해도,
아직도 가난해.
엄마, 미안해.
나 사실 가난이 너무 싫어.
가난 덕분에 공부해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싫고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인정하는 것도 창피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푼돈을 모으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고
매달 40만 원 씩
꼬박꼬박 받는 용돈이 적다고
투정부리는 친구의 말도 싫어.
아니, 부러워.
아직 철이 덜 들었나봐.
엄마, 기억나?
내가 어릴 때 물어봤잖아.
우리 가난하냐고.
엄마, 아빠가 맨날
돈 때문에 싸우는 거 보고
고작 열 살이었던 내가,
다 알면서 물어봤잖아.
우리는 집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식탁도 있고,
먹을 것도 있는데 우리 정말 가난한거야?
라고 물어봤던 것 같아.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3일은 생각하고 물어본 거야.
엄청나게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
근데, 다 빚이야.
우리꺼 아니야. 라고
엄마가 대답했던 것 같아.
열 살짜리 내가,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나는 걸 보니까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돈 앞에 눈치만 늘고,
돈 앞에 작아지고,
모든 것을 다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한 게.
엄마,
나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돈 없어서 한두 푼에 쪼잔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어.
왜 난 기꺼이 베풀지 못할까.
왜 이렇게 내어주는 것에 야박할까.
돈 앞에서 머리를 굴릴 때마다,
와, 나 진짜 속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욕했어.
그때마다 나는
다시 가난을 원망했어.
내 그릇이 작은 게
다 가난 때문인 것 같았어.
사실 지금도 참
많은 것들을 가난 탓으로 돌려.
근데, 맞잖아.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잖아.
돈이 많으면,
나 주말에 늦잠 잘 수 있잖아.
사장님 눈치,
손님 눈치 안 봐도 되잖아.
메뉴판을 받으면 메뉴보다
가격을 먼저 보지 않아도 되잖아.
가끔은 친구들한테 한 턱 내고
생색도 내보고 싶고,
나를 위한 선물도 사고 싶고,
한평생 나를 위해 희생한 우리 엄마,
좋은데도 데려가고 싶은데.
돈이 많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엄마,
나 가난은 싫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아.
우리가 부자였다면,
그건 엄마가 부자인 거잖아.
어차피 그건 엄마한테
무임승차하는 거니까.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엄마는 가난해도 내 엄마잖아.
나만큼이나 엄마도
휴일 없이 열심히 살고 있잖아.
내가 어떻게
가난을 투정할 수 있겠어.
힘들지만 나를 보면 힘이 난다는,
그런 엄마 앞에서.
엄마, 나 나중에
진짜로 부자가 되면 말야.
아, 나 말고, 우리 말야.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우리가 부자가 되면 말야.
그때는 꼭 엄마 품에 안겨
펑펑 울면서 투정부리고 싶어.
이렇게 부자가 되기까지
너무 힘들었다고.
하필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한
하늘이 원망스러웠다고.
부잣집에 태어난 친구를 보며,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고.
내 청춘이 다 지나도록
한 번의 주말 없이 사는 게 서러웠다고.
그렇게 울면서 투정부리고 싶어.
근데 아직은 아니지, 엄마?
나는 아직 좀 더 가난해야 되잖아.
아직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되잖아.
때가 안 된 거잖아.
근데 좀 무섭네.
우리 정말 열심히 살면
부자 될 수 있는 거 맞지?
나 무서워.
우리가 부자가 되었을 땐,
엄마가 너무 늙어 버렸을까봐.
나는 주말을 반납했을 뿐이었지만,
우리 엄마,
한평생 쉬지도 못하고 떠날까 두려워.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
내가 아주 오래 오래 생각해봤는데.
여기 적은 엄마한테 하려던 말들.
죽을 때까지 절대 엄마한테 말 안 할래.
그냥, 철든 딸,
착한 딸, 기특한 딸로 남을래.
난 주말 없어도 돼, 엄마.
괜찮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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