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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네가 올 지 안 올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을게.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 #36219]

by 행복을찾아@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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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나무숲 - #36219번째 포효

 

 

나 얼마 전에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었어.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서.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앉았어.

 

그리고 사진사분의 말대로,

머리도 한 번 더 정리하고.

고개는 좀 더 왼쪽으로,

어깨는 내리고.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했지.

 

이제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하셨어.

그런데 표정을 못 짓겠는 거야.

순간적으로 웃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어.

 

사실 요 며칠동안 웃을 일이 없었거든.

큰 시험을 준비한다는 거

생각보다 힘든 일이더라.

 

하루종일 힘들게 공부하고 돌아오면

유일하게 날 반기는 것은

불 꺼진 좁은 방뿐이야.

 

아무리 외로워도

주위 사람들과의 연락은 부담스럽고,

부모님께 투정부릴 나이도 지났잖아.

 

세어보니까 나 하루에

다섯마디도 안 하더라.

이러다 말 하는 법도

잊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부담감은 커지고,

잠은 안 오고,

너도 내 곁에 없고.

 

네가 그랬지,

나 이 성격 그대로 가다간 분명

시험 준비 시작하고서도

매일 밤 울고 있을거라고.

 

이럴 때 보면 우리가

꽤 오래 사귀었긴 했나봐,

나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는걸 보면.

 

맞아, 나 매일 울어.

요즘엔 잠도 못 자서

약도 먹고. 바보같지.

 

 

하여튼. 결국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고 어떤 사진이 좋을까

고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어.

 

사진사 아저씨께서는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사진 보정하는 걸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어.

 

지금 공부하고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힘들진 않냐고.

너무 힘들면 친구들 만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쉬는 시간도 가지라고.

 

남자친구한테

기대보기도 하라고.

 

그래서 네 얘기가 나왔어.

시험 준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서 헤어졌다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너한테 연락 다시

안 왔냐고 대뜸 물으시더라.

안 왔다고 했지.

 

난 너한테서 연락이 혹시 올까봐

차단도 안 해놨는데.

 

너는 독한건지,

나에게 완전히 무관심해졌는지,

다른 여자가 생겼는지

나에게 연락 한 번 오지 않았어.

 

연애할 때 자존심도 다 버려가면서

구질구질하게 널 붙잡던 내가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너는 내가 헤어지자는 말에

그냥 내 손을 놓아버렸어.

 

 

사진사 아저씨랑 얘기를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저런 식의 마음에

쌓아뒀던 말들을 하게 되더라고.

 

가까운 사람한테는 오히려

더 하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들을

털어놓고 있었어.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사진을 받으러 저녁에 다시 사진관에 갔더니

아저씨가 마음에 드냐고 하시면서

증명사진을 보여주시더라.

 

마음에 든다고,

잘 찍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나한테 초콜렛을 주시는거야.

 

단 것 먹고 기운 좀 내라고.

그리고 이 초콜렛 먹으면

그 친구에게 연락 올거라고.

 

너한테 연락 왔으면

좋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내가 했던 말들이 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나봐.

 

그런데 그 말 들으니까,

괜히 못 먹겠는거 있지.

나 초콜렛 엄청 좋아하는데

먹을 수가 없더라.

 

먹고 나서 너에게 연락이 안 오면

괜히 실망할 것 같아서.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사실.

너와 함께했던

2년의 시간이 그립기도 하고,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내가 먼저 손을 놓아버릴 정도로 힘들었던

마지막 한 두달 때문에

네가 너무 밉고

돌아가고 싶지 않기도 해.

 

너와 행복하게 잘 지내는 걸

상상하면서 미소지으면서도,

재회는 이별의 연장선이라는 말처럼

같은 이유로 헤어지는 걸 상상하게 돼.

 

그런데 내일 공부하다가 지치면

이 초콜렛 먹으려고.

 

네가 올 지 안 올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 이 자리에서,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을게.

 

네가 이 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덕분에 오늘은 울지 않고 잠드네.

 

너도 푹 자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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