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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感聲) 공감

생의 절반 [이병률 님]

by 행복을찾아@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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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데

육십 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 년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데
꼬박 삼십 년이 걸린 셈

 

 

이러저러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일진대

 

남은 삼십년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

 

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
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한 사람을 만나는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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