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와 백조의 사랑이야기 13편
< 백조 >
그래서 내 계획을 얘기했다.
조그만 까페 비스무리한 걸 꼭 해보구 싶다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함께 하겠단다.
괜찮다니까, 없는 돈을 어쩌라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데굴데굴 하구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인간아, 빨랑빨랑 움직여야지. 나와."
"왜, 취직이라도 됐어?"
< 백수 >
임시직이지만 어쨌든 기뻤다.
학교 홈 페이지 공고란에
이름이 떠 있는 걸 봤을 땐 순간,
입학시험 붙었을 때처럼 흥분됐다.
월급이 80만원 밖에 안되고
후배들 보기가 쫌 민망할거 같긴 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암튼 뭐든지 저지르고 보기로 했다.
놈이 아직 결혼을 안한게 다행이었다.
나도 결혼한 애들한테 꾸어달랄 정도로
눈치없는 놈은 아니다.
이자쳐서 갚을 테니까
걍 잊어버리고 있으라 그랬다.
그래도 이런 친구도 있으니
30년 인생 헛 산것 같진 않았다.
내 마지막 비상금 2백을 합해서 건네 줬더니
고맙다며 울먹울먹 할라 그런다.
< 백조 >
소개비 아낄라고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여기저기 돌아 다녔더니
원래 가늘지도 못한 다리가 퉁퉁 부었다.
부동산에 갔을 때는
얼마 갖고 시작할 거냐고 해서 한 삼천...하면
그 돈 갖고는 대학가에서 장사 못 한다며
엄마는 여자가 무슨 술집이냐고
이제 시집은 다 갔다고 엉엉 울며 펄펄 뛰었다.
물론 벽지랑 의자가 동네 닭 집 수준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6시 정도면 퇴근해서 함께 일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일 것도 같다.
근데 그가 넘 피곤할 것 같다.
그냥 이 가게 같이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어차피 낮에 손님도 없을 텐데
놀면 뭐하냐고 하면서
요즘 넘 놀았더니 힘이 남아 돈다며
알통에 힘을 준다.
그에게 잘 해야겠다.
< 백수 >
카운터엔 컴터도 갔다 놨다.
여동생이 집에 있는 PC 를 들고 나올 때
입에 칼을 물고 막아섰지만
임시직이라 컴터도 내가 가지고 가야 한다고
눈물로 구라를 쳤다.
후배 놈들이 그녀에게
"형수니임~" 하며 너스레를 떤다.
하여간 이 자식들은... 아주 잘했어!
잘될까 하는 염려도 물론 된다.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더욱 새롭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 백조 >
청소하고 페인트칠 하니까
그런대로 밝아 보인다.
의자와 탁자도 청계천에 가서
중고품 중에 깔끔한 걸로 들여왔다.
그가 컴터로 음악 틀으라며
자기 집에 있는 있는 PC도 가져와서
스피커랑 연결해 놨다.
암 생각없이 사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였나 보다.
근데 여동생한테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모르겠다.
오후에 주문한 간판이 도착했다.
Some Where 란 영문이 시원했다.
섬웨어... 섬웨어....
다시 한 번 되뇌어 봤다.
손님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읽을수록 정감이 가는 것 같다.
가게 이름을 뭘로 할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가 제안한 상호였다.
난 Why not? 으로 할라 그랬는데
들어보니 그게 더 괜찮은 거 같았다.
어딘가에, 우리가 생각한
미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딘가에" 있을리란 생각이 든다.
백수와 백조의 사랑이야기 14편
< 백수 >
시작은 까페였지만
갈수록 호프 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암튼 그럭저럭 손님은 들었지만
솔직히 인건비 나오는 것도 빠듯했다.
어쨌건 바쁘니까 별 고민이 없어서 좋았다.
< 백조 >
아직 돈은 크게 안 벌리지만 만족한다.
첨 소문 내는데는 그의 힘이 컸다.
선후배를 비롯한 동문들에다가
교수님들까지 모시고 왔다.
그런데 이 바보가 늘 돈 받을 때면
미안해 갖곤 우물쭈물 한다.
그래서 내가 잽싸게
다른 일을 시키곤 늘 계산을 받는다.
모 그럴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며칠 전에는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려도
엄마 아빠가 다녀갔다.
아무래도 조만간 뽀록 날 거 같다.
< 백수 >
솔직히 나도 엄청 수강변경 많이 했었다.
첫 시간에 교수님 인상 딱 봐서
답이 안 나올거 같은면 밥 먹듯이 바꾸곤 했다.
후배들이 나중엔 나보고
들어야 할 선생님과 안 그런 선생님을
찍어 달라고까지 했으니 사실 할 말 엄다.
다행히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 가는 거 같다.
얘가 워낙 싹싹하게 인사도 잘하고
그러니까 동네 분들도 좋아하고 그러신다.
가끔 술먹고 "누나~~ 사랑해요!!" 하는
놈들만 없으면 딱인데...
그치만 핵생들이라 글케
크게 꼬장 피는 녀석들도 거의 없다.
그러고 보니까 낼이 예비군 훈련이네.
우~ 군대 다시 가는 느낌이다.
몇 시간 안되는데도 넘 받기 싫어진다.
학교 같으면 별 생각 없이 빠질텐데..
그래도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눈 딱 감고 받아야지 모.
그녀에게 내 군복 입은
늠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겠어.
< 백조 >
계산기 두드리다 보면
늘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최대한 아끼면서 벌면 1년이면
보증금이랑 권리금은 빠질 것도 같고...
그럼 1년만 더하면
좀 큰 가게로 옮기고
그후엔 적금도 하나 더 들고...
하여간 상상은 돈이 안 들어서 좋다니까...
이 인간이 낼은 예비군 훈련을 간다는데,
물어보니까 올해가 마지막이란다.
그렇게 들으니 인간 나이 엄청 먹은거 같네.
요즘 연하를 잡아야 능력있는 여자라는데
내가 넘 싼 값에 팔려가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암튼 군복 입은 모습을 함 보고 싶다.
낼 훈련 끝나면
옷 갈아입지 말고 오라고 신신당부 했다.
하여간 군복 입었는데도
자세 안 나오기만 해 봐라.
< 백수 >
하여간 8시간이 왜 이렇게 긴 거야.
왜 군복만 입으면 이렇게 시간이 더디 가는지.
그래도 그녀가 어젯밤에 싸준 김밥이 있어
올해는 행복한 훈련인거 같다.
예전엔 훈련 들어와서 "도시락 안 살 사람" 하면
손 드는 남자들을 보면서 솔직히 부러웠었다.
근데 올 해는 당당히 내가 손을 들게 됐다.
어제 싸 놓은 것이긴 했지만
금방 해준 것 처럼 넘 맛있었다.
철조망 통과를 할 때도 군복 구겨질까봐
엄청 요령피우며 신경썼다.
멋있게 보여야 되자나...
사격 할 때도 집중해서 했다.
잘 쏴서 과녁지를 그녀에게 보여줄려고.
근데 과녁지 교체할 때 보니까 넘 깨끗했다.
"어? 이상하다." 하고 있는데 옆에서 쏜 사람이
"모야? 왜 이러케 많이 맞았어?"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다.
훈련 끝나고 군복에 묻은 먼지 자알 털고..
가게로 향했다.
가게가 저 앞에 보이는 순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버님이 나를
놀란듯이 쳐다보고 계셨다!
나의 군복에 붙어 있는 예비군 마크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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