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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꽃 피워 봄27

요양원에서 쓴 어느 어머니의 편지 미안하구나, 아들아.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모진 목숨 병든 몸으로 살아 네게 짐이 되는구나. 여기 사는 것으로도 나는 족하다. 그렇게 일찍 네 아비만 여의지 않았더라도 땅 한평 남겨줄 형편은 되었을 터인데.. 못나고 못 배운 주변머리로 짐 같은 가난만 물려주었구나. 내 한입 덜어 네 짐이 가벼울 수 있다면, 어지러운 아파트 꼭대기에서 새처럼 갇혀 사느니.. 친구도 있고 흙도 있는 여기가 그래도 나는 족하단다. 내 평생 네 행복 하나만을 바라고 살았거늘.. 말라비틀어진 젖꼭지 파고들던 손주 녀석 보고픈 것쯤이야 마음 한번 삭혀 참고 말지. 혹여 에미 혼자 버려두었다고 마음 다치지 말거라. 네 녀석 착하디 착한 심사로 에미 걱정에 마음 다칠까 걱정이다. 삼시 세끼 잘 먹고, 약도 잘먹고 있으니... 2020. 12. 31.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해.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 출장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올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몇 번을 버티다 마침내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 2020. 12. 29.
당신은 저의 영원한 고향이십니다. 첫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던 순간부터 나는 삶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리고 남편의 통곡소리와 함께 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그때 내겐 '이대로 한 줌 재가 되어 아들 곁에 뿌려지리라.'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즈음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께서 내 앞에 서 계셨고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친정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나를 방에 들게 하고 잠시 나가시더니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셨다. "보약이다. 너 오면 맥일라구 밤새 다려 논거. 어서 마셔라."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찌 보약을 먹으라는 지 아버지가 야속했다. 나는 앞뒤 생각도 않고 약사발을 거세게 밀쳐냈다..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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