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었던 어느 날
난 그만 실수로 줄을 놓치고 말았다.
강아지는 난생 처음 온
절호의 찬스라 생각했던지
전속력으로 그동안 감추어뒀던
질주본능을 발휘하여 달려나가고
순식간에 점점 멀어지며 고 놈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확 밀려 왔다.
난 오직 잡아야 한다는 그 생각에
죽어라 하고 뛰어 쫓아갔지만
내가 따라 뛰면 뛸수록 그 모습을
살살 돌아보면서 우리 못된 강아지는
더욱 그 숏다리를 부지런히도 돌려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점점 우리 사이는 멀어지고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다리의 길이보다는
다리의 숫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다 내가 지쳐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멈춰 서버리고 말았다.
‘헉헉... 이제 끝이야 저놈을 못볼지도 몰라’
숨이 턱까지 차오는 것을 넘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쫓아가는 것을 멈추자
그것을 알아챈 강아지도 뛰던 것을 멈추고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졸랑졸랑 돌아와서 주저앉은
내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 전처럼...
강아지는 그저 한 번 마음껏
달려보고 싶었는데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쫓아 오는 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도망간 것이다.
돌아보면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니
안심도 되어 신이 나서 더 뛰고,
또 뛰고 그럴수록 열심히 쫓아오니
일단 더 열심히 도망가고 본 것이다.
강아지를 불러들인 것은
내가 따라가서가 아니다.
뒤돌아보니 그때까지 당연히 보이던
그 모습이 없다는 허전함과 당혹감
더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는 섭섭함
그런 감정들이 만들어낸
그리운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자신의 바램이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행여
다시 줄을 놓치게 된다해도
절대로 내가 먼저 당황하여
잡으려 따라 뛰지 않는다.
가만 그 자리에서 서서
놈이 좋아하는 것을 들고서
다정하게 부르는 것이 제 발로
걸어오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지 않고는 일단 도망가려 뛰어
달아나는 놈은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일단 줄을 놓친 사랑하는 그 역시
혹시 그를 잃을까 당황하여
전속력으로 따라 잡으려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더 빨리 달아난다. 점점 멀어진다.
그것보다는 처음처럼 여전히 내가
‘그가 끌리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한다.
그를 잃는다는 무서운 생각이 나를 확 덮쳐도
따라 뛰어 나가면 길을 잃을 뿐이다.
스스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절대로
억지로 따라가서 잡아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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