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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라만 보아야만 했던 너에게.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러브 스토리)

by 행복을찾아@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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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라만 보아야만 했던 너에게.

 

 

그래. 처음에는

너가 너무 예뻐서 마음이 갔어.

 

조금 빨개진 얼굴로

술게임을 하던 너를 볼 때,

술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웃음이 나오더라.

 

계속해서 너한테 물을 따라주던 나와

물 말고 술을 달라던 너.

 

술자리를 빠져나와 서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걸어가던 그 거리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 뒤로 우리는

수많은 공통점을 계기로 친해졌어.

그거 알아?

 

사실 대부분의 공통점은

내가 급하게 만든 거였다는걸.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치가 별로 없는 편이었던 너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계속 감탄만 하더라.

 

그래도 고등학교 친구한테

이렇게 잘맞는 사람이 있다고

나를 소개할 때는 조금 찔렸어.

 

뭐 지금은 진짜로 잘 맞겠지.

너를 따라서 좋아하던 것이

이제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되었으니.

 

특히 마라탕과 꿔바로우를

알게 해준 건 정말 고마워.

그 두 개는 이제 진짜로

내 인생음식으로 소개할 수 있을거 같아.

 

그래도 민트초코는 아직은 좀 그렇더라.

그래도 요즘도 카페에 가면 민트초코를 먹어.

휘핑크림은 꼭 가득이지 물론.

 

그 중 우리가 가까워진 건

무엇보다도 김광석 아저씨 덕분일거야.

 

너의 프로필 뮤직부터

음악 재생목록까지 도배된 김광석 아저씨에 대한

너의 팬심은 우리 과에서도 유명했지.

 

아예 교양 과제를 김광석 아저씨에 대한

소논문으로 낸 적도 있었잖아.

 

김광석 아저씨는 워낙 유명하니

나도 알고는 있었는데,

다른 것들처럼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다가

들킬 뻔 한 적도 있었어.

 

기타만 좀 치는 분인줄 알았는데

그 아저씨가 하모니카까지 잘 부를 줄이야.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영상을 찾아봤는데,

나도 신기할 정도로 거기에 훅 빠져버렸지.

 

내 재생목록은 김광석 아저씨 노래로 뒤덮히고,

노래방 애창곡도 죄다 바꼈었어.

덕분에 너와 같이 간 노래방에서도

자연스럽게 너와 듀엣을 부를 수 있었지.

 

물론 애들한테는 언제적 노래냐고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말야.

 

지금 생각해봐도

김광석 아저씨한테는 참 감사드려야겠다.

덕분에 세상에 그런 행복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김광석 아저씨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흐드러진 벚꽃 때문이었을까.

중간고사가 지나가고 난 뒤 우리는

동기들 중에서도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어.

 

그때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아직도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야.

 

딱 이맘때부터였는데.

그렇게 재미없다는 축제도

나에게는 너무 재밌었어.

 

10cm가 김광석 아저씨 다음으로 좋다고 하던

너를 따라 잔디밭에서 3시간을 기다렸잖아.

 

애들이 재미없다고 가자고 했을 때

서운해하던 너를 보고

나도 그때 갑자기 10cm 팬이 되었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너와 단둘이 있게 되었어.

 

사실 그때 공연은 잘 기억이 나지않아.

그냥 그 하늘빛, 잔디 내음,

조금의 떨림과 어색함, 그리고 웃음.

 

그때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던 너와 나.

돌아가는 길에 너가 덮고 있던

나의 과잠을 보며 얼마나 좋았던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 두근거림이 잊혀지질 않아.

 

그 후로 우리는 과에서 모두가 주시하는

관계가 되었던거 같아.

 

동기들도, 선배들도 우리보고 언제 사귀냐고

한 마디씩 던지고 지나갔잖아.

 

웃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던 너를 보며

한 편으론 아쉬웠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컸어.

 

나는 편하게 웃을 수가 없었거든.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인데,

우물쭈물거리면서 그저 너의 옆에만 붙어있는 내가

참 한심하면서도 감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겉으로는 아니라하고 속으로는

아쉬웠던 날들이 그렇게 지나갔어.

 

두근거림은 꿈이었지만,

너와 멀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현실이었으니까.

 

그 과정 속에서 너가 겪게 될 수근거림과 뒷말은

내가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된 이유였지.

 

하지만 우리가 가깝게 지낼수록

나의 마음은 너로 물들어갔어.

 

수업이 끝나고 같이 달려가던 장터,

친구들을 보내고 몰래 둘이 갔던 코인노래방,

술에 취해 둘이 걷던 낙성대 밤거리...

 

모든 것이 찬란했던 그 시절,

나의 주변은 온통 너였어.

 

 

 

 

그러다가 우리는 기말고사를 보고,

다들 방학을 지내러 내려갈 때가 되었지.

 

이쯤되니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사실 다른 사람들은 참 답답해했던 것 같아.

 

나한테 아직도? 하며

물어보는 선배들도 많았거든.

 

이미 과에서 한심한 놈으로 찍힌 나였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너한테

어떻게 내가 조심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그런데 한동안 너를 못본다고 하니

조바심이 났던 것 같아.

물론 옆에서 친구들의 바람잡이도 한 몫 했지.

 

마침 너의 생일이 방학 직전이고,

너보다 시험도 조금 먼저 끝난 나는

네 생일에 맞추어 고백을 준비했어.

 

계획은 이랬어.

 

단골 노래방에 같이 가서,

친구한테 몰래 기타를 갖고 와 달라하고,

김광석 아저씨 노래를 불러주면서

고백을 하는 거였어.

 

기타라곤 중학교때 F코드까지 쳐본게 다였지만,

너 덕분에 아저씨 노래 몇 곡은

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했으니까.

 

물론 지금의 나라면 열심히 말렸겠지만

그때는 꽤 맘에 들었던 계획이었어.

 

드디어 그날,

노래방 주인아저씨 허락도 받고,

케이크도 준비했지.

 

노래방에 가서 화장실을 핑계로 혼자 나와

기타를 들고 갔을 때 너는 막 웃었어.

 

생일 챙겨줘서 고맙다고 박수도 쳐주고.

물론 그때 나는 떨려서 정신이 없었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신청곡을 받았고

너가 신청한 노래는 역시나

김광석 아저씨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리스트에 있던 노래라

안도하며 노래를 불러주는데,

그때 너의 눈빛을 봤어.

 

그 눈빛은

나한테 고마워하는 눈빛이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망설이는 눈빛이었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눈빛을 보며

고백을 하면 안될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

 

내가 다가가면 그만큼 우리 사이가

더 멀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어.

 

노래가 끝나고

잠시 동안 찾아온 정적이 두려워서,

내가 먼저 웃어버렸어.

 

뭐이리 표정이 진지하냐고,

누가 보면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고.

 

어색한 장난에 너는 따라 웃으며

답가를 해줄테니 기타나 쳐보라고 했지.

 

답가는 '이등병의 편지' 였어.

 

그제서야 원래대로 돌아간 우리는

웃으며 장난을 쳤지.

케이크를 서로의 얼굴에 묻혀가며

하루 종일을 웃었던 것 같아.

 

물론 그 케이크에 올려뒀던 편지는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어.

결국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

그래도 그건, 버리지는 못하겠더라.

 

그렇게 방학이 지나고,

학기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지냈어.

물론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말이야.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누나가 편지 써준다던 너의 말과 함께

나는 군대에 가게 되었어.

 

훈련소에서는

매일 같이 너의 편지가 오고,

자대에서는 틈만 나면 너와 전화를 하고.

 

누가봐도 연인 사이였겠지만

나는 그저 그 거리를 지키고 있었어.

그때 너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거든.

 

수평선 같은 그날들이 지나가고 있을 때,

여느 날처럼 노래를 듣고 있던 내 귀에

'사랑했지만', 이 노래가 갑자기 들리더라.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

 

그냥 그렇게 그 노래를 듣고 있었어.

뭔가 무거운 것이 내 가슴을 툭 치더라.

 

수 백 번을 넘게 들은 그 노래가

왜 갑자기 그렇게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어.

 

너와 나를 이어주었던 그 노래들이

이제는 우리를 노래하고 있구나,

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주고 있구나.

 

그 노래가, 내 마음이,

이 눈물이 너무나 아프고도 소중해서

한동안 혼자 울었던 것 같아.

 

그 후로 나는 너의 연락을 점점 피했어.

 

여전히 너는 내 맘속에 빛나고 있었지만,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거든.

 

너도 조금 의아해하다가,

화도 조금 내다가,

삐진 건지 관심을 버린 건지

연락이 오지 않았지.

 

내가 너를 밀어낸 것인데도

그때의 그 아쉽고도 허한 마음이란.

 

잊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너를 썼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길고 길던 2년도 끝이 보이더라.

 

 

 

 

그렇게 얼마 전에 나간 마지막 휴가.

 

몇 달 만에 걸려온 너의 전화를 받고

함께 게임을 하던 친구들한테

양해를 구한 뒤 뛰쳐나갔지.

 

휴가 나왔으면서 왜 연락을 안하냐는,

자기 취했으니까

얼른 데리러 오라는 너의 목소리.

 

사실 너를 지우면 지울수록

너는 나에게 더 깊게 새겨졌던 걸까.

어느새 나는 너를 위해 기타를 연습하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어.

 

아니, 달라졌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동안 한 번 더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부족했던 거였겠지.

 

술 취한 목소리, 빨개진 얼굴,

그리고 여전히 예쁜 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조금 짧아진

머리를 빼면 너는 그대로였어.

 

"얼마나 마신거야 대체?"


"헤.. 오랜만이다."


"너 취했다. 얼른 들어가자"


"싫은데? 안들어갈건데?"

 

너는 비틀거리며 낙성대 거리를 걸어갔지.

 

그렇게 말도 없이 걷기를 10분, 벤치에서 5분.

그리고 너가 했던 말.

 

"음.. 근데 너... 나 좋아했잖아."

 

"..."

 

"아직도 좋아해?"

 

"...응."

 

"계속.. 좋아해줄거야?"

 

말하지 못했던 내 사랑의 결말은

그렇게 바뀌었어.

 

알고보니 많이 취하지 않았던 너는

그날 많은 이야기를 해줬지.

 

사실은 새내기 때부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고,

아무리 눈치가 없는 너여도 그렇게

티를 내면 모르는게 이상하다 그랬지.

 

나름 잘 숨긴다고 숨긴건데.

 

그리고 너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다만 저번 연애가 너무 아팠어서,

그런 사랑을 다시 하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났다고 그랬어.

 

이렇게 잘맞는 사람이 또 없을텐데

나마저 가버릴까봐, 그럼 너무 슬플까봐.

 

그때 노래방에서도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척 넘어갔다고.

 

이런 사이에 만족하고 살자,

그래도 서로 계속 볼 수 있으니까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내가 군대를 가고,

연락도 뜸해지다 보니 깨달았다고 했지.

 

상처 받지 않으려다가

나를 놓치면 후회할거라고.

 

내 마음이 그대로인지 몰라서 두려웠지만,

너는 내게 손을 내밀어 줬어.

 

그리고 그 용기가 우릴 이어주었지.

 

여기까지가 우리 이야기의 시작이야.

서론이 조금 길었네.

 

나는 며칠 뒤에 전역을 하고,

너를 만나러 가겠지.

 

그리고 나서는 뭐, 어떤 이야기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두 가지는 확실한데,

 

하나는 그 이야기 속의 남자 주인공이

지금 엄청 행복하다는 거고,

또 하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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