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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나는 육 년 짝사랑을 했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가슴 아픈 짝사랑 사연)

by 행복을찾아@ 202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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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 년 짝사랑을 했다.

 

딱히 대단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그 아이를 육 년 좋아했던 거고,

그 아이는 육 년 동안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거였다.

 

나는 육 년을 기다렸는데,

정작 그 아이는 플레이 버튼조차

누르지 않았던 거였다.

 

아, 우리가 처음 만난 계기는 단순했다.

같은 학교였고,

우리 집 사 층 위에는 그 아이가 살았다.

 

학교 갈 때 자주 만났고,

워낙 말이 많고

친구를 좋아했던 나는 말을 걸었고,

단지 그렇게 친해진 거였는데,

어려서 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그냥 좋아졌다.

 

언제부턴가 숨을 쉬던 것처럼.

그냥 정말 그렇게 시작된 거였다.

 

나는 걔를 만나는 게 그냥

친구로서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비가 올 때, 걔가 우산을 내밀던 손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나는 몰랐다.

 

단지 내가 순간의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은 거로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보고 싶은 감정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동성 친구들만큼 걔를

아끼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같이 우산을 쓰고 갈 때,

사귀냐고 놀리던 친구들을 타박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던 이유를 나는 몰랐다.

참 어리고, 순진했다.

 

좋아하는 걸 깨닫게 된 계기는

참 어이없고도 단순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아는 동창에게,

 

"자꾸 보고 싶어?"

"다른 여자들이랑 있으면 속상해?"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어?" 하는

말 따위를 늘어놓던 도중,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도 사랑에 빠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현실이 됐고, 나는 곧 인정했다.

 

어쨌거나, 걔는 나한테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사랑에 빠진 증상은 그렇다.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 사람이 좋아한다던 책을 괜히 사 보고,

혀가 절단될 정도로 달달한 말을 해 주고 싶은 것.

 

언젠가 숨이 막힐 것만 같고,

과연 내가 이 사람 없이 살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며,

마음 속에서 괜히 실험을 시도하는 것.

 

당신을 저울질함으로써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것.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걔를 기다렸다.

나는 팔 층, 걔는 십이 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한참을 서서

십이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종종 지각을 했다.

맨날 만나는 걸 보니까 정말 소울메이트 같다며,

알고 보니까 우리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람 아니냐며

맑게 웃는 너를 보며 속이 쓰렸다.

 

그 텔레파시, 실은 내가 만드는 거야.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겨우 삼키며 웃었다.

 

그러게, 우리 정말 잘 통한다.

알고 보니까 너,

일부러 내가 나오는 시각에

맞춰 나오는 건 아냐?

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때. 말하고 싶었다.

 

머리도 못 말리고 나온다며 타박하던

너에게 정말 외치고 싶었다.

 

있지, 실은. 혹시 네가 빨리 나올 것만 같아서

머리만 감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서

삼십 분을 서 있었어.

있지, 실은. 내가 널 참 좋아해.

 

어린 나는 잘 우는 편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눈물부터 삼켜야 했지만,

아득바득 참아 절대

감정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런 내가

네 앞에서 딱 한 번 운 날이 있다.

 

모두의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던,

그런 바늘 같은 날에.

 

생각해 보면

재수가 참 없었던 날이라고만 했으면 될 텐데,

사춘기 감성으로는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

 

네가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고,

눈물이 뺨에서 얼어서 많이 추웠다.

 

너는 당황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건네 줬고,

거기에서는 익숙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조만간 섬유유연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밀인데,

사실 그 손수건은 방에 걸어 놓았다.

 

향은 다 빠졌지만

그 곰돌이가 너무 귀엽다는 핑계로,

버리기 애매하다는 핑계로,

소품이라는 핑계로.

 

집에 도착하니까

너에게 한 개의 카톡이 왔었다.

 

유튜브 링크였는데,

커피소년의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 라는 노래였는데,

제목만 보고도 눈물이 흘러서 답장을 하지 못했다.

 

두 개의 카톡이 더 왔다.

 

"울고 있어?" " 미안해."

 

왜 걔가 미안한지 난 아직도 모른다.

단지 두 마디였는데, 펑펑 울었다.

단지 두 마디였는데, 마음에 꽂혔다.

 

나는 학교에서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가끔 고백도 종종 받았는데,

그럴 마음이 없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는데,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걔한테 고백을 두 번 정도 했는데,

한 번은 장난을 가장해서,

한 번은 진지하게 한 거였다.

 

둘 다 반응이 몹시 좋지 않았다.

표정이 굳으면서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했다.

 

내가 장난이라고 어색하게 웃자,

걔는 그제서야 표정을 풀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인데,

없어질까 봐 놀랐다는 말을 했다.

다시는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고 했다.

 

미안해, 장난이 아니었어.

미안해, 사실은 내가 널 좋아했던 거였어.

 

너같이 좋은 사람이 왜 나를 만나 주겠냐고

웃으면서 건넨 말에도 나는 웃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왜 그래,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모르는 거야?

 

웃으면서 말하고 싶었는데.

난 그렇게 넉살이 좋은 사람인 아닌가 보다.

 

나는 낮은 목소리를 좋아한다.

땅으로 곤두박질쳐서 언젠가는

맨틀에 도착할 것도 같은 그런 목소리.

그런 목소리를 너무 좋아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걔는

내가 좋아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가끔 손이 시리다고 투정을 부리면

손을 잡아 줬고,

덥다고 투정을 부리면

손으로 부채질을 해 줬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평생을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차라리 독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 너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놓아지지를 않았다.

모두 다 무능한 내 탓이었다.

단지 걔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내가 잘못이었다.

 

나는 너를 만난 후 두 번째로 울었다.

눈가가 아플 정도로 울었는데,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뭐 하냐."

 

아무 대답 없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바로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울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당황한 듯

쏟아지는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왜 울어. 누가 그랬어? "

"무슨 일 생긴 거야? 야. 너 설마 아파?"

 

평소의 너와 정말 달랐다.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 버렸다.

속상했다.

 

그리고 나는 너와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연락을 하면 내가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일 년 정도였다.

헤어졌다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고,

하루에도 카톡이 열 개 정도는 왔는데,

내가 다 씹어 버렸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마주치면

통화를 하는 척했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건데,

그냥 연락할 걸 그랬다.

 

피하는 게 답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 알았고,

걔는 이사를 가 버렸다.

죽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그럴리가 없어서 그냥 무시해 버렸다.

 

사실 이사를 갔다는 그 날부터는

카톡이 한 통도 안 왔다.

그 빈 집에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걔의 친구들, 선생님,

그리고 가장 친했던 나마저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사를 갔다는 걸 안 다음

카톡을 주욱 읽었다.

 

안 읽어?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그 세 문장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카톡을 탈퇴했다.

 

사실은 333+가 될 정도로

많았던 문장들인데,

더 읽을 엄두가 안 났다.

 

세 번째 울음이었고,

보고 싶었다.

 

지금은 전혀 연락이 되지를 않는다.

네가 없어도 사계는 여전히 흐른다.

네가 없어도 나는 숨은 쉰다.

어쩌면 아직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쓰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숨죽여 울었다.

언제부턴가 숨을 쉬던 것처럼.

그냥 정말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이렇게 길 줄은 몰랐는데.

 

보고 싶다. 찾고 싶다.

이 말밖에 나오지가 않는데,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십이 층에 사는 사람과 마주친다.

옛날의 너와 비슷한 소년,

나와 비슷한 소녀가 사는 듯했다.

 

이제는 이름과 생일,

그리고 간단한 정보만 기억나는 너지만,

아직도 손수건의 향기가 생생해서

그들을 볼 때마다 걔가 생각난다.

 

안녕, 잘 지내? 혼자 둬서 너무 미안해.

있지, 그 손수건 아직도 나한테 있어.

돌려주라고 말을 안 하길래

너무 좋아서 내 방 한 켠에 뒀어.

 

받으러 와 주면 안 될까.

그 구실로 내 얼굴,

한 번만 더 봐 주면 안 될까.

그러면 안 되는 걸까.

 

네게 전해 주고 싶었던 소식들이 참 많았어.

피해서 너무 미안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어리석었던 사람이라 너무 미안해.

사실은 말야, 너를 몇 번이고 찢고 싶었어.

다 내팽겨치고 확 떠나고 싶었어.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아직도 널 사랑한다는 것,

고작 그게 전부였어.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죽어 버리고 싶어서,

탈주하고 싶어서, 널 잊고 싶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걸 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육 년 동안 네게

익사하게 해 줘서 고마웠어.

네가 있어서 사람에게서

헤엄치는 방법을 알게 됐어.

 

덕분에,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감정에도

떠밀려가지 않을 수 있게 됐어.

 

잘 지내?

너는 지금, 안녕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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