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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기도하겠다. 네가 이제는 너를 구속하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늦은 청춘을 즐길 수 있도록. 가슴 아린 사랑을 내게 가르쳐주어 고맙다.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24181]

by 행복을찾아@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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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年12月14日#24181번째포효

 

 

너를 처음 만난건 2014년 여름이었다.

 

아직도 그 날 네가 입고 온 옷, 짓던 표정,

내게 하던 질문 하나하나가 선명히 기억난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너 때문에

내 심장은 오랜만에 뛰기 시작했고

너는 시범강의를 하는 내내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네가 나를 마주해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숨이 막히고

정신이 멍해졌기 때문이다.

 

과연 너를 가르치는 동안

내 심장이 버텨줄지 궁금했다.

우여곡절끝에 너를 가르치게 되었다.

 

인간은 역시 익숙해지는 존재인지

시간이 지나며

네 아름다움은 익숙함에 묻혀갔다.

 

그러나 너는 내가 네게

익숙해졌다 느낄때마다

나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해보듯

내 심장을 자꾸 때렸다.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네 지극한 순수함과 배려는

나를 점점 네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행복했다.

너를 위해 교재를 쓰고

교수법을 연구하며 보내던 수많은 밤은

 

성적이 올랐다며 감사를 표하는 네 웃음,

선생님 정말 잘 가르치신다는

칭찬 한 마디에 과한 보상이 되었다.

 

공차를 좋아한다던 네 말에

나도 엉겁결에

공차를 좋아한다고 말해버렸다.

 

사실 나는 공차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바로 다음 과외시간

공차 두 잔을 들고 과외에 오던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 취향은 펄이 든 블랙 밀크티,

30퍼센트, 노 아이스.

그렇게 네 취향마저도 그대로

내 취향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너와 함께 공차를 사고

각자 갈 길을 가던 기억도 난다.

 

그때 우리는 취향이 어차피 같으니

한 사람이 주문하고 두 잔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별 것 아닌 일에 깔깔대었지.

 

그 이후로 공차는 내게

흔한 프랜차이즈가 아니게 되었다.

 

기억날지 모르겠다.

네가 어느날 과외 시간에 갑자기 내게

너와 같은 재수학원에 다닌다던

어느 남자애 얘기를 해 준 것을.

 

그 남자애가 번호를 물어보았다는 말에

내 세상은 잠깐 무너졌다.

 

그렇지만 당연히 안 줬다고,

공부해야 한다며 장난스레 웃던 너는

내 세상을 순식간에 다시 쌓아올렸다.

 

 

그 해 나는 인생 중 제일

빨랐던 반년을 경험했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이윽고 수능 전

마지막 과외가 끝났다.

 

많은 과외학생들을

수능 직전까지 가르쳤지만

그토록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던

과외시간도 처음이었다.

 

마지막 과외를

마치 고백이라도 하듯 준비한 것 같다.

 

그러나 정작 해준 말 없이

잘 될 것이라고,

수능 끝나고 연락하라고,

 

딱 그 두 마디의 말만 남기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헤어졌다.

 

 

한여름밤의 꿈이라도 꾼 듯

그리고 모든게 끝났다.

오히려 홀가분했던 것 같다.

 

깊게 스치긴 했지만 이 역시도

스쳐지나가는 호감이었구나 했다.

 

돌아오는 길,

매봉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한 번도 찾아듣지 않았던

매봉역 3호선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담담한 노랫말과 멜로디는

차마 그 앞에서 터지진 못한

내 감성을 뒤늦게야 터뜨려버렸다.

 

이제 무언가 다른 이유가 없다면

너를 보지 못할 것임이

그토록 서러웠다.

 

그제야 내 마음이 순간의 호감이 아닌,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가 다 나온 뒤에

얼굴을 보기로 했고,

간간이 연락을 이어갔지만

 

나는 거짓말처럼 그 해 12월

예정에 없던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를 앞에 두고

제일 괴로웠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2년의 시간 중에 혹시라도

내가 너를 잊어버릴까봐

나는 매우 두려웠다.

 

고민하다가 입대 전날 네 페이스북에서

네 사진을 따서 현상해 가지고

훈련소에 들어갔다.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 관계에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내 관물대 속, 지갑 속

네 얼굴을 보면 힘이 솟았다.

 

너는 내 군생활의 원동력이었다.

 

 

후에야 알게 되었다.

 

너는 참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의고사 성적 역시 잘 나왔지만

급히 진로를 돌린 때문인지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다.

 

편입을 준비한다고 했다.

참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 말에 안심이 되었다.

 

공부할 때는 공부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돌리지 않는 네가

적어도 2년 동안은 다시

공부에 얽매이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다.

 

기뻤지만 내가 매우

나쁜 놈이라는 것 역시 알았다.

 

삼수생이었음에도 다시

편입을 준비하게 되었음에

네가 느낄 고통은 이때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하다.

 

작년 10월, 휴가를 나와

다시 네게 연락을 했다.

약속을 잡고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뒤늦게야 그때는

중간고사 기간이었고,

지금은 네게 있어 학점이 무엇보다

중요할 시기임을 깨닫고 후회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은 하루 전날 파토가 났다.

너는 아프다고 했다.

네가 실제로 아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생각없음을 탓할 뿐이었다.

그 이후론 너를 그리워할 뿐,

차마 군생활 동안엔

네게 연락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나는 전역을 했다.

거진 1년 만에 네게 연락을 했다.

언제나와 같이 너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편입 공부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한 발 뒤로 숨었다.

 

네게 현재의 나는 힘내라는 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힘내라는 말 한 마디,

시험 끝난 후에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기고 연락을 끝냈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기차가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르겠다.

정류장이 어디이든 기차는

언젠가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를 기다리고 생각하는 것은

내 일상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내 기차의 종착역이 너였으면 좋겠다.

 

내가 네게 깊게 빠져들기 전

너는 대학에 가면 가슴 아린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때

가슴 아린 사랑을 해보진 못했지만

가슴 아린 사랑보다는

행복한 사랑이 훨씬 나을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이젠 오히려 내가 역설적이게도

너로 인해 가슴 아린 사랑을 살고 있다.

 

고맙다.

가슴 아린 사랑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서.

가슴 아린 사랑이란 이렇게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것이구나.

 

 

나는 너를 기다린다.

 

슬프게도 네가 나를 좋아하고

너 역시 나를 2년 동안 기다렸을 것이라는

행복한 기대는 없다.

 

그래. 이건 나의 짝사랑이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다.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또 고백하고 싶다.

그 변화의 원동력이 너였다는 것을.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나는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저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제대로 찍고 싶다.

물론 그 마침표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이제는 하도 꺼내봐서 꼬질하게 때가 탄

네 사진을 꺼내보곤 한다.

 

그리고 내 가슴은

처음 너를 만났던 그 날처럼 설렌다.

이제 네 편입일정이 끝날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올 1월에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결과가 어떻든 이 사진은

네게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서로 잘 지내고 있자.

 

 

기도하겠다.

네가 이제는 너를 구속하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늦은 청춘을 즐길 수 있도록.

 

가슴 아린 사랑을 내게 가르쳐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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