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15번째뿌우 - 2017. 11. 21 오전 12:24:58
나는 금수저다.
아니, 금수저 이상이다.
한 다이아수저쯤?
너무 많은 걸 가진 인생과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집은 30평 남짓이다.
방은 두 개고 화장실은 하난데
방 하나는 부모님 방이고
하나는 나랑 여동생이 같이 쓰는 방이다.
이 집은 여름에도 춥고
겨울엔 완전 춥다.
우리 방은 특히 침대가
창가에 있어서인지 잘 때 춥다.
겨울에 자다 깨면
몸이 얼어서 부서질 것 같다.
그러면 부스스 일어나서 안방으로 간다.
엄마와 아빠 사이엔 이미
동생이 낑겨 자고 있다.
추워서 왔겠지. 나도 그 사이에 눕는다.
엄청 좁지만 훨씬 따뜻하고 잠도 잘 온다.
자다가 새벽에 엄마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고나면
으레 이불 한 겹이 더 덮이는 것이 느껴진다.
더더더 따뜻하다.
우리 아빠는 허리가 안좋으시다.
어릴 때 나를 안고 차에서 내리다가
디스크가 터지셨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나는
떨어뜨리지 않으셨다고 했다.
덕분에 멀쩡히 살아 대학까지 왔다.
아빠는 집안일의 80퍼센트를 맡아 하신다.
청소, 빨래 돌리기, 빨래 접기, 쓰레기 버리기 등등.
나머지 20프로는 설거지와 밥 짓기인데,
이 부분은 아빠가 너무 소질이 없어서
엄마가 하신다.
가끔 엄마가 안 계실땐 아빠가
아빠표 라면을 끓여주시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부모님 두 분은 가사 일을
딱히 분담하신 적이 없다.
그냥 시간 되는 사람이 하고,
오늘 더 피곤한 하루를 보냈을
여보당신을 위해 내가 하고,
집에 왔을때 쾌적한 환경에서
내 여보당신이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한다.
아빠는 엄마를 도와주지 않으시고
그냥 집안일을 '하신다'.
난 그런 아빠를 보며 자라왔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
결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야', '너' 소리 한 번 없이
이름으로 엄마를 불러주며,
언젠가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투정하는 엄마에게 '앵두'라는 애칭을 지어
근 몇 년간을 앵두야~하고 불러오며,
소녀같고 활동적인 엄마를 위해
피곤할텐데도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새벽 기차로 바다를 간다던지
대학생 커플처럼 홍대에 가서
버스킹을 보고 온다던지 하는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곤 돌아오는 길에
잊지 않고 나와 동생의 선물을 사 들고 오시며,
아빠는 그 밖에도
수많은 방식으로 엄마를 사랑했고
나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결혼이 이런 것이구나 배웠다.
아빠는 엄마를 '앵두'라고,
내 여동생을 여전히 '아기'라고 부른다.
아빤 내 막내동생한테 정말 깜빡 죽는다.
그리고 내 애칭은 '때지'다.
돼지는 너무 어감이 기분 상하니까
귀엽게 때지.
아빠는 그런 식으로 날 부르고,
나한테는 짖궂게 장난도 많이 치시지만
내가 하고싶어하고 갖고싶어하는 건
최대한 뭐든지 다 해주신다.
내가 갖고싶어하는 텀블러가 있다면
회사 근처 집 근처 커피숍은
다 들러서 찾아보신다.
내가 지갑을 아무 데나 잘 두는데,
집에 굴러다니는 내 지갑을
아빠가 가방이나 머리맡에 두고 가실 땐
항상 지갑에 2만원정도씩이 접혀 들어있다.
많이 큰 돈은 아니어도
난 매번 너무 행복해서
마음이 찌릿한다.
엄마는 너무 소녀같고,
친구같고, 사랑스럽고,
귀여우신 분이다.
나랑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자매같은 사이다.
엄마는 내가 카카오톡으로
기프티콘을 깜짝선물하면
소녀처럼 좋아하신다.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내가 설거지를 다 해놔도
좋아하신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은
참 쉽고 행복한 일이다.
엄마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나랑 전화를 하고싶어한다.
항상 내가 좋고,
내가 궁금하시단다.
엄마는 너무 여리고 아이같아서
나에게 조금만 힘든 일이 있거나
나랑 다투는 날엔 방에서 우신다.
나도 엄마를 닮아서 눈물이 많다.
우린 싸워도 다음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화해한다.
참 둘다 뒤끝이 없다.
엄마는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자기 옷, 자기 신발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 예쁜 옷들을 잔뜩 사와서
나랑 동생한테 입히며
인형놀이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리고 내가 외출할 때
그날 입을 옷을 코디해주는것도.
나는 객관적으로 그렇게
대단히 좋은 모델은 아니지만
엄마에겐 세상 하나밖에 없는
바비인형같은 모양이다.
엄마는 애교도 많고 눈물도 많아서
아빠는 엄마를 절대 못이긴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을 엄청
사랑하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도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냥 두분이서 연애하는 것 같다.
닭살돋지만 행복하다.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하는 집에서 태어난게.
내 동생은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걔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나보다 키도 크고 어른스럽다.
내가 옆에서 푼수를 떨면
이상한 눈으로 쓱 보고
절레절레하는 동생이지만
맛있는 거나
예쁜 거나
좋은 게 생기면
무조건 내 것까지 챙긴다.
집에 맛있는 게 있으면
꼭 내 몫을 남긴다.
친구같은 동생이 나도
세상에서 제일 좋다.
엄마아빠는 서로를
제일 좋아할테니까
우린 우리끼리
제일 좋아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아마
제일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다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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