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해는 이만큼이나 길어졌고
유난히 여유로운 저녁 두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저녁 메뉴나 고민합니다.
"뭐 먹지? 뭐가 맛있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진짜 오늘은 네가 한번 골라봐 1년을 만났는데...
난 네가 골라주는 메뉴는 한 번도 못 먹어본 것 같아.
평소 메뉴 고르는 걸 수학 문제만큼 싫어하는 여자
그렇지만 남자의 말에 오늘만큼은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어 그러면 우리 거기 갈까? 왜....
예전에 파스타 먹었던 데 이름이 블루....
뭐 그런 거였는데 기억 안 나?
왜 내가 물 한잔 다 쏟고..."
그런데 남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
여자는 더 열심히 설명하죠
"야외에 테이블 쫙 있고 가운데 큰 나무도 있고
체크무늬 테이블보 깔려있고..."
그런데도 남자는 영 기억을 못 해내는 얼굴로..
"그런 데가 있었어? 야외라고?
이상하다 난 기억이 안 나지? 우리 거기 언제쯤 갔어?"
그 말에 대답하려고 기억을 더듬던 여자는 순간 멈칫
그만 얼굴이 확 빨개집니다.
생각해보니 그건 지지난 가을
그러니 그때 옆에 있었던 사람은
지금의 남자 친구가 아니었고...
당황한 여자의 얼굴을 보고 남자도 눈치를 챘습니다.
하지만 뭐 그런 걸로 화를 낼 건 아니니까요.
남자는 다만 장난을 많이 섞어서
하지만 약간은 진심으로 툴툴거리기 시작합니다.
"야 누구야~ 어떤 인간이야?"
민망해진 여자는 혀만 쏙 내밀고
남자는 계속해서...
"야 어떻게 그런 걸 헷갈리냐?
그래서 그 큰 나무 있는 그 집 파스타 맛있었어?
와... 얼마나 좋았으면 물을 다 쏟았어
손이 막 후들후들한 거야?
생각하니까 진짜 기분 나쁘네 점점..."
그리고 돌아보면 여자의 얼굴은 아직도 빨간 토마토
남자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손을 쓱 잡아끕니다.
"야 너는 이제부터 메뉴 고르지마.
다음에 또 누구랑 헷갈리면 어떡해.
에이 농담이야. 대신 우린 당분간
파스타는 안 먹는 걸로 콜?"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다섯 살 여섯 살 시절
소꿉놀이를 하면서 이미 옆집 꼬마를
여보 당신이라고 불러봤던 과거 있는 사람들.
지금의 당신 안에 오직 나만 있어야 한다는 건
아마도 어리석은 욕심.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며
그렇게 받은 사랑과 상처의 기억으로
지금 당신이 완성됐을 테니...
'누구야 대체 어떤 인간이야?'
그딴 바보 같은 질문 대신에 난 이런 거나 물어보기로 합니다.
"너 이렇게 예쁘게 웃는 건 누구한테 배웠어?"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사랑을 말하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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