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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러브스토리, 백수와 백조의 사랑이야기 [1 ~ 2]

by 행복을찾아@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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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백조사랑이야기 [1]

 

< 백조 >

오늘 친구가 결혼한다.

내 나이 30하고도 몇 살 더....

나만 솔로다.

대학도 졸업 안하고 일찌감치 결혼 한 친구는

애까지 끌고 와서 "아줌마한테 인사해야지~" 했다.

애만 아니면 한 대 후려 칠 뻔 했다.

친구들이 나 보고 부케를 받으란다.

이젠 지겹다.

남자도 없는데....부케가 다 무슨 소용이람.

안 받겠다고 했더니 오늘 받기로 한 애가 못 와서 내가 받아야 한단다.

지네들은 다 결혼을 해서 받을 수 없다나 어쩐다나....

한참을 방방 뜨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내가 받기로 했다.

친구들이 너 성격 거칠어졌다며 안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 나 노처녀에 백조다....어쩔래....지지배들아.

 

 

< 백수 >

31살에 '삼초땡(30대 초반에 명예퇴직) ' 이 되었다.

한숨만 나오는데 주위에 결혼하는 놈들은 왜 그리 많은지....

오늘도 한 놈이 간단다.

또 사회를 봐야 한다.

젠장 남 결혼 하는데 사회 본 건만 벌써 수십 번이다.

이제는 아예 그러려니 한다.

식장에 들어가기 전, 계단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여자 몇 명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서로 부케를 받으라고 미루고 있는것 같은데,

목숨걸고 싸우고 있었다.

뭘 그런걸 가지고 싸우는지....

여자란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결국 한 여자가 받기로 했는데 그 여자 목소리가 제일 컸다.

암만봐도 성깔이 더러운거 같았다.

난 저런 여자랑은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어랏, 근데 그 여자가 우리랑 같은 팀이다.

왠지 일진이 안 좋을 거 같다.

 

 

< 백조 >

피로연을 하는데 아까 사회를 봤던 놈이 내 앞에 앉았다.

근데 자꾸 날보고 실실 쪼갠다. 꼴에 이쁜건 알아가지구.

아닌가? 내가 백조 인걸 눈치챈것인가?

요즘 자꾸 소심해 지는 것 같다.

건배를 해도 나랑은 왠지 피하는 거 같다.

이 자식이 내가 논다고 깔보나...

한 잔 두 잔 먹다보니 술이 좀 올랐다.

이 자식이 자꾸 날 피하는 거 같았다.

술을 먹여서 보내고 싶었다.

허여멀건하게 생긴것이 꼭 백수같이 생겼다.

설마 백수는 아니겠지.

내가 노니까 남도 노는 걸루 보인다.

근데, 왜 나랑은 건배 안 하냐고 했더니,

그럼 게임 해서 지는 사람이 마시기로하잖다.

좋지~~ 나도 이 나이에 안해 본 게임이 있을리 없으니 말이다.

사람 몸에서 <지>자로 끝나는 걸 대자고 한다.

엄지, 검지, 무명지, 중지, 약지 가 우선 나왔다.

배때지, 허벅지, 모가지....

응용해서 손모가지, 발모가지도 나왔다.

내가 할 차례였다.

장고 끝에 "장딴지" 하고 외쳤다.

놈이 씩~ 웃더니 해골바가지란다..

폭탄주 한 잔 원샷했다.

놈이 다시 귀지 란다. 또 마셨다.

이번엔 피지 란다.

죽이고 싶었다. 3잔 째다.

이젠 없겠지 했는데..실실 웃더니 코딱지 란다.

더러운 놈. 속았다. 놈은 선수 였다.

연거푸 네 잔을 먹었더니 하늘이 뱅뱅 돌기 시작한다.

 

 

< 백수 >

성질도 안 좋은 여자가 술도 더럽게 잘 먹었다.

비장의 기술로 보내 버렸다.

2차 나이트를 가기로 했다.

근데 이 웬수가 엎어져 있더니,

나이트란 소리에 "어~~ 나도 가~"하며 몸을 일으킨다.

진짜 진상 이였다.

설레발을 치던 여자는 정작 나이트에 가선 시체처럼 잠만 잔다.

나중에 결혼 해도 절대 저런 딸은 낳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다.

적당할 때 집에 갈려고 했는데,

친구놈이 오늘 지네 집에서 자고 내일 공항까지 운전을 해 달란다.

호텔서 안 자냐니깐 잠깐 눈 붙이는데,

뭐하러 호텔에 가냐고 제수씨가 그런다.

싫다고 하고 싶었는데 변명거리가 없었다.

백수인거 뻔히 아는데, 바쁘단 핑계를 댈 수가 있어야지...

근데 젠장, 그 시체도 같이 가서 잔댄다. 별 수 없었다.

택시에 태우고 친구 부부와 넷이, 얻어놓은 아파트로 향했다.

아무래도 잘 때 몸조심을 해야 될거 같다.

 

 

< 백조 >

아웅~ 새벽에 깼는데 머리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니 아무래도 체력이 떨어지는 거 같다.

몸을 일으키고 보니 내 방이 아니었다.

헉! 여기가 어디지?

혹시 아까 그 백수같은 놈이 날 어떻게 하려구?

불을 켜고 자세히 보니 낯이 좀 익은 방 이다.

며칠 전에 친구가 가구 들여 놓는다고 할 때 와 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제 쓰러져있으니까 여기로 끌고 온 것 같다.

하긴.... 집에 가서 엄마한테 욕 먹는 거 보단 낫다.

울 엄만 날 팔아서라도 시집보내고 싶단다.

젠장, 그게 딸한테 할 소린지...

우~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거실로 나왔다. 헉~ 근데 이게 뭐람!!

왠 이상한 놈이 머리는 까치집을 한 채 거실바닥에 뒤집어져 자고 있었다.

아까 그 웬수 놈이였다.

추운건지 술기운이 떨어진 것인지 달달 떨고 있다.

저 놈 땜에 맛이 간걸 생각하니 생각 같아선 똥침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었다.

두 손을 모았다가.... 참았다.

내 손에 치질이 옮을지도 모른다는생각이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무렇게나 걷어찬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이녀석도 잠버릇이 꽤 고약할 거 같아 보인다.

하지만, 뭐... 그런데로 귀여운 면이 있긴 하다.

아무리 봐도 삼십대 초반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이었다.

그래도 아까는 너무 얄미웠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더니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괴로웠다.

하는 수 없이 욕실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서 왠 미친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를 째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울 속에 비친 나였다.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하는 수 없이 수돗물을 틀어

손으로 받아 마시는데 밖에서 똑똑하고 노크소리가 들린다.

"저기요... 마실 물 여기 있는데요."

 

 

< 백수 >

친구가 남자끼리 함께 자자는 걸

"그래도 첫날 밤인데." 하고 밀어 넣었다.

방이 2개라 그 인간을 작은 방에 재우고 난 마루에 누웠다.

눕히기 전에 다시 한 번 쳐다봤더니 그런데로 예쁜 얼굴이긴 했다.

그런데 내 처지가 처지인지라 그런지 별 느낌이 없다.

아무래도 요즘은 일부러 여자들에게 무심하는 척 하는 것 같다.

하긴 백수 주제에 뭐 그런 걸 깊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인간 잠버릇 진짜 고약하다.

무슨 여자가 코를 그렇게 고는지 잠이 오질 않았다.

바닥도 너무 더워 이불을 걷어 내고,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락말락할 때 였다.

끼이~ 하고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웬수가 잠이 깬 모양 이었다.

그냥 죽은 척, 아니 자는 척 하고 누워 있었다.

순간 자꾸 재채기가 나올라 그래서 억지로 참았더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 여자가 내 앞에서 잠시동안 움직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덮칠 것만 같았다.

젠장 집에 갔어야 하는 건데... 잠에서 깨는 척을 할까 할 때 였다.

그 여자가 이불을 덮어줬다.

우라질 더워 죽겠는데....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여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바보같이 물 사온거있는데...

모른 척 할까 하다가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다가 진짜 깜짝 놀랐다

눈이 퉁퉁 붓고 머리는 산발을 한것이

영화 <링>에 나오는 귀신이었다.

 

 

 

 

백수와 백조 사랑이야기 [2]

 

< 백조 >

두시 반 비행기라고 그래서 넉넉하게 10시 쯤 집에서 나왔다.

그냥 집에 가서 엎어지고 싶었지만,

어제 재워준 성의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아침 일찍 이른 시간이라 배달 시킬만한 중국집도 없어

공항에 가는 내내 빈 속이 울렁 거린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시내에 차가 별로 없는게 다행이었다.

근데 그 웬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실 실실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같은 것을 하는 놈 같이 보인다.

거기다 라디오에서 핑클 노래가 나오니까 "오! 예~" 하며 따라 부른다.

더 이상 잃을게 없는 놈 같아 보였다.

사고에 대비해 안전벨트를 꼭 움켜 쥐었다.

 

 

< 백수 >

운전을 하고 가는데 자꾸만

새벽에 산발한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옆에 앉아있는데, 얼굴을 쳐다 보았다가는

너무 크게 웃을 거 같아서 앞만 보고 운전했다.

마침 핑클의 노래가 나오길래 웃음을 참으려고 크게 따라 불렀다.

도착해서 대충 신공항 건물 좀 구경하고,

빈 속에 국수 한 그릇 때려 넣고 친구 녀석을 들여 보내는데

이놈이 수고했다고 봉투를 내밀었다.

안 받을라 했는데, 이 자식이 자꾸

“같이 데이트나 해." 하고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별로 고맙지가 않았다.

줄라면 저 인간 안 보는데서 줄 것이지...

 

 

< 백조 >

지지배... 몰디브로 간단다.

말만 들어본 그 곳....

나도 과연 그런 곳에 가 볼 날이 있을런지

생각만 해도 서러움이 자꾸만 복받쳐 올랐다.

그런데 이 웬수는 신랑이 주는 돈을 자꾸 싫다고 거부한다.

빙신... 확 내가 나꿔채고 싶었지만 체면 땜에 참고 있었다.

돌아 오는 길, 둘이 있으니까 쪼끔 썰렁하다.

아... 지금 이 길이 신혼여행의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절대 저 녀석하고는 아니다.

아파트 관리소에 차 열쇠를 맡기고 나더니,

녀석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듯 한참을 우물쭈물 거린다.

사내자식이 저렇게 용기가 없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려는지 마누라 고생께나 시킬것 같다.

데이트 하고 싶음, 하고 싶다고 말을 하던가.

분명히 영화 한 편 보자고 할 것 같다.

어떡할까? 음... 볼 까 , 말 까......

아까 받은 돈도 있으니 아까워서라도 봐야 되겠지.

그런데 이 자식이 한다는 말이 "저기요... 요 근처가 충무로 잖아요."

충무로? 영화보자는 얘기치고는 좀 진부하다.

"거기 돼지 껍데기 죽이게 하는데가 있는데, 우리 껍데기나 먹으러 가죠."

"................!!!"

 

 

< 백수 >

씨... 걍 집에 가고 싶었지만,

받은 돈 때문에 그럴수도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에이, 이 자식은 5만원 줄거면 그냥 주던지 뭘 봉투에다 넣고 폼을 내는지...

하는 수 없이 껍데기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쫌 실망한 눈치 같았다.

바보... 껍데기가 얼마나 맛 있는데.

막상 들어가 앉아 맛을 보더니 나보다 더 잘 먹는다.

어제 간만에 술 맛을 봤더니 오늘은 오후부터 술이 땡긴다.

역시, 술은 쉬면 안 된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얘는 어제 많이 먹어서 안먹겠지?

그래도 예의상 "어떻게 한 잔?" 했더니 달란다.

그래 차라리 빼는 여자보단 낫다.

 

 

< 백조 >

황당했지만 이 자식이 자꾸 맛있는 거라고 벅벅 우겨서 따라갔다.

가게도 어디 꾸시시 한데로 끌고갔다.

수 틀리면 확 엎어버리리라 맘 먹었다.

근데 돼지 껍데기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첨 먹어보는건데 굉장히 고소하고 씹는 맛도 좋았다.

녀석이 "거봐요~ 등소평이 그것만 먹었다니까요." 하고 자랑을 한다.

확실히 입맛이 도니까 짜증이 봄눈 녹듯 확 가라 앉는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매너도 제법 있는 놈 이다.

의자를 빼주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맞춰 주고 그 밑에 냅킨까지 깔아 주었다.

고기도 잘 구워진 것은 내 앞으로 밀어주며 드시라고 한다.

그래서 안 마시려던 술을 한 잔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 백수 >

나는 전생에 웨이터였나 보다.

어디 들어가서 앉기만 하면 자동으로

식탁 세팅을 해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고기도 남이 뒤집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집어야 직성이 풀린다.

근데 이상하다.

아까 그렇게 껍데기 생각이 나더니

몇 개 먹고 나니까 별루 땡기질 않는다.

그래서 걔한테 다 밀어줬더니 우걱우걱 잘도 씹는다.

배가 몹시 고팠나 보다.

난 술이 고팠다.

따끈한 어묵 국물에 소주가 잘도 넘어간다.

소주 일 병을 하고나니 약기운이 조금씩 도는거 같다.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고민이 된다.

짤린 직장을 댈까.....

혹시, 제수씨가 저 녀석 논다고 벌써 말해 버렸으면 어쩌지....

분명히 말했을 것 같았다.

젠장 이래서 여자 만나는게 싫다.

 

 

< 백조 >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내 처지 땜에 그럴수도 없었다.

회사에서 짤리기 전에 내 발로 걸어 나올 때는

내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정말 괴롭다.

어느덧 소주가 2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이제 결혼 한 애 얘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름기를 먹어서 그런지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난다.

저 놈이 맥주 한 잔 더 하자는 얘기 안하고

그냥 집에 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별 수없이 캔맥주나 사들고 가서 신세한탄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우울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저 놈이 맥주 한잔 어떠시냐고 물어본다.

당근 O.K 였다!! 아차차...넘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되지......

 

 

< 백수 >

먹는 것 앞에 놓고 빼지 않고 잘 먹는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 다시 안 볼 앤데...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내 전공 분야였다.

오백cc 한 잔을 시원하게 원 샷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젠장... 내 친구들은 천짜리도 원 샷 하는데.

네잔 째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데 띵~ 했다.

아무래도 어제 한 잠도 못 자서 그런 거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다크써클에 눈까지 퀭하다.

으~~ 저 웬수....

그래두 얘기를 나눠보니 괜찮은 애 같았다.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회피하니까

대화가 자꾸 빙빙 겉도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다.

내가 노는데 쟤가 보태준게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에 돌아가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 백수 생활한지 6개월 째라고.

순간 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자기는 회사 나온지 2년 넘었단다.

백조란다. 그랬구나. 한바탕 웃었다.

노는 사람들끼리 뭐가 좋다구... 몇 잔을 거푸 들이 마셨다.

그리고,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ㅜ.ㅜ

 

 

< 백조 >

놈이 맥주 500을 원 샷 하는걸 보니 내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지금은 체력이 딸려 도저히 안되지만

한 때는 나도 저런 것쯤이야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다.

자식이... 어제 좀 그렇게 마시지.

나 한잔 마실 동안에 500을 네잔이나 먹더니 화장실에 물을 빼러 간다.

그 틈을 이용해 집에 전화를 때렸다.

"엄마 나야."

"어~ 왜?"

"엄마는.... 딸이 전화 했는데, 어, 왜가 뭐야. 걱정도 안 돼?"

"어제 은미가 전화해 주더라...너 은미네서 자고 갈꺼라고."

"아유, 알았어. 끊어. 쫌 있다 갈께."

슬펐다.

이젠 체념한 듯, 초연한 엄마의 목소리가 날 아프게 했다.

놈이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날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약물 같은 것을 투여하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여... 물어 볼게 있는데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는 집에 가서 먹었어야 하는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제가 뭐 할 거 같애요?"

"......??"

"제가 사실 놀거든요. 회사 짤린지 6개 월 됐어요."

"예....."

"근데 제 얘길 안하려니까... 그 뭐랄까....웬지 답답하더라고요.

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더라구요.

누군가를 만나서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하는데.....

괜히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도 같고요.

그냥 저에 대해서 솔직하고 싶네요."

솔직히 의외였다.

은미 그 지지배도 그런 얘길 안 해줬었다.

하긴 물어볼 틈도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식, 근데 벌벌 떨면서 얘길하냐. 무슨 큰 죄 지은 것 처럼.

내 얘길 할까, 말까?

그래 나도 솔직해 지자.

"저겨... 짤리신지 6개월 됐다구요?"

"예?...아 예. 그 뭐... 곧 일 들어가야죠."

요놈아... 직장 잡기가 그렇게 쉽냐..

그럼 내가 2년 넘게 쉬고 있겠냐....

"사실 전..... 짤린지 2년 넘었어요."

미쳤나 보다...이런 말을 이렇게 쉽게....

"예?!!!"

아~ 그자식 사람 민망하게.....

"사실 저도 백수 아니 백조예요."

"......................"

이 자식이 왜 이러나.......

"푸하하하하~~~"

"아우,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악수 한 번 합시다! 아~ 사람이, 진작 얘기하지... 암튼 반갑습다!!"

웃기는 놈이었다.....뭐가 그리 좋다구 악수까지....

암튼 홀가분한 맘으로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사람은 거짓말 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백수라는 사실을 털어 놓으니까 엄청 홀가분한가 보다.

술을 마구 들어 붓는다.

그러더니..... 그냥 잠들어 버렸다.

마치 삶의 모든 긴장을 일순간에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좀 안 돼 보였다. 하긴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다.

간신히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힘이 딸려서 잠시 계단에 앉혔다.

웬수가 내 어깨에 기대어 다시 잠이 들었다.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 피곤에 지친 모습이다.

잠시 그대로 있었다.

코까지 골며 자는데 깨우기가 미안 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왠지 모를 측은함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낄낄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쪽 팔렸다.....

놈의 핸펀을 꺼내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봤는데 아무것도 입력된 것이 없었다.

갑자기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꺼내 뒤졌다. 복권이 나왔다.

눈물이 났다. 꿈도 야무지게 40억 당첨금 짜리였다.

내가 막 지갑을 뒤지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무슨 빽치기 보듯한다.

여러가지로 쪽 팔린다.

간신히 수첩에서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여동생인거 같았다.

누구냐고 하길래 얼떨결에 여자친구라고 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듯 의심스러워 했다.

아무튼 집이 대림동 이라는 걸 확인하고,

여동생 보고 나와 있으라 그러고 택시에 태워 보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집까지 바래다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핸드폰에 찍힌 놈의 집 전화번호가 보였다.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이신 듯한 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하시는데, 수화기 저 너머에서

"아우~ 오빠 정신 좀 차려~~" 하는 여동생의 괴성이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를 내려 놓았다.

길고도 험한 1박 2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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