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놀러온 친구가
일주일쯤 집에 있다가
오늘 아침에 떠났거든.
집처럼 편히 쓰라고 했더니
정말 자기 집처럼 막 지내더라구.
옷도 막 아무데나 벗어놓고
아무거나 꺼내먹고.
젖은 수건도 막 아무데나 던져놓고.
혼자 사는 게 워낙 익숙한 나라서
누가 집을 어지르는 게 좀 싫기도 했고
같은 공간에 지내는 것도 좀 불편했는데
막상 간다고 하니까 의외로 많이 서운했어.
'좀 더 있다 가지'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그런 말이 나오더라
친구는
'곧 다시 폐 끼치러 올게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면서 웃어 보이는데
난 기분이 이상해서 웃지도 못했어.
그렇게 친구를 공항 버스에 태워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30분 만에 집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
이 좁은 집이
이렇게 허전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
소파 위에 엉켜있는 이불과 베게.
아침까지 친구가 쓰고 간 수건이며
마룻바닥에 놓여있는 물 컵.
급히 나가느라 내려놓기만 하고
마시지도 못한 커피는 아직 따뜻하고.
겨우 일주일인데
제일 친한 친구도 아닌데
싫을 만큼 허전했어.
난데없이 울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헤어지기 전 몇달간
우리가 멀리 떨어져 지내던 시간동안
우리 정말 많이 싸웠잖아.
넌 이상할정도로 예민해져서
별것도 아닌 일로 짜증을 내곤했지.
왜 머그잔에다가 콜라를 마시냐고
왜 리모콘을 여기다 뒀냐고
난 그런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결국은 화를 낼 수밖에 없었어.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왜 매번 사람을 지치게해?
내가 오는게 싫어?
그런거면 말을 해
내가 안 오면 되잖아.
한번만 내가 너를 보내봤다면..
떠나는 역할이 아니라
보내는 역할을 해봤더라면..
혼자 남겨진 빈 방에서
누군가가 남긴 물건들을
치우는 일을 해봤더라면
너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진 않았을텐데.
너는...
너는 화를 낸 게 아니었구나.
내가 가방을 챙기며
또 버스를 몇 시간이나 타야한다고
투덜거리는 동안.
너는 혼자 견뎌야할 허전함과
나 몰래 싸우고 있었구나.
너를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너한테
화나 내는 남자친구 였구나.
친구를 보내고도 이렇게 휑한데
넌 매번 내가 떠나간 다음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헤어진지 벌써 여러해.
친구가 남기고간 커피를
싱크대에 쏟아버리다가
난 이제야 네가 가여워서
눈물이 난다.
미안.
사랑을 말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