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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이야기

그런 나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감히 젊은날 고생은 해봐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꼭 아파야 청춘인 걸까.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나는 서자다]

by 행복을찾아@ 2021.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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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2015년 11월 22일

 

나는 서자다.

 

 

조선시대도 아닌 현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나는 서자다.

 

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나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의 어머니도

그를 많이사랑했겠지.

 

그에게 이미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나의어머니의 뱃속에는

내가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는나를 지우는 대신 평생을 홀로

외롭게 사는 길을 택하셨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혼인 신고를 하지 못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 못 했다.

 

대신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라

지금의 성씨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호적을 빌려주었다는 명분으로

여전히 나의 어머니는 큰집에 인사를 한다.

명절이면 양 손 가득 과일을 사들고

큰집에 인사를 간다.

 

돌아오는 건 없다.

돌아오는 건 어머니의 쓰라린 속뿐일 것이다.

돌아오는 건 나의 찢긴 자존심일 것이다.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가난하다.

악착같이 공부했을 뿐이다.

선생학습? 학원? 과외?

나와는 관련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눈에는 물 마를 날이 없었으며

코에는 피 마를 날이 없었다.

 

공부하다 어지러워 쓰러질 때면

병원에 실려가도 수액맞을 돈이 아까워

동네 마트에서 초콜릿 하나를 사오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 학교에 들어왔다.

하지만 등록금을 내기가 벅찼다.

 

장학금을 받고 싶었지만

큰아버지는 신청하지 못 하게 했다.

 

젊을 땐 사서 고생하는 거라고,

학비 정도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울컥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참았다.

 

몇 년 전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을 떄가 문득 떠오른다.

 

퀭한 눈에 사무적인 끄덕임,

졸린 듯한 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는

서류상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른한 목소리로 직원은

"아주머니는 미혼이신데?" 를 연발했다.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끝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도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함께 살아온 아프고 쓴 인생이그려진다.

 

작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한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

 

그런 나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감히 젊은날 고생은 해봐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꼭 아파야 청춘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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