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대나무숲 - 2015년 11월 22일
나는 서자다.
조선시대도 아닌 현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 하는
나는 서자다.
나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나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의 어머니도
그를 많이사랑했겠지.
그에게 이미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나의어머니의 뱃속에는
내가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는나를 지우는 대신 평생을 홀로
외롭게 사는 길을 택하셨다.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혼인 신고를 하지 못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 못 했다.
대신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라
지금의 성씨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호적을 빌려주었다는 명분으로
여전히 나의 어머니는 큰집에 인사를 한다.
명절이면 양 손 가득 과일을 사들고
큰집에 인사를 간다.
돌아오는 건 없다.
돌아오는 건 어머니의 쓰라린 속뿐일 것이다.
돌아오는 건 나의 찢긴 자존심일 것이다.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가난하다.
악착같이 공부했을 뿐이다.
선생학습? 학원? 과외?
나와는 관련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눈에는 물 마를 날이 없었으며
코에는 피 마를 날이 없었다.
공부하다 어지러워 쓰러질 때면
병원에 실려가도 수액맞을 돈이 아까워
동네 마트에서 초콜릿 하나를 사오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 학교에 들어왔다.
하지만 등록금을 내기가 벅찼다.
장학금을 받고 싶었지만
큰아버지는 신청하지 못 하게 했다.
젊을 땐 사서 고생하는 거라고,
학비 정도는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울컥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참았다.
몇 년 전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을 떄가 문득 떠오른다.
퀭한 눈에 사무적인 끄덕임,
졸린 듯한 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는
서류상 내 어머니가 아니었다.
나른한 목소리로 직원은
"아주머니는 미혼이신데?" 를 연발했다.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끝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도 어머니의 손을 잡으면
함께 살아온 아프고 쓴 인생이그려진다.
작고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일찍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한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
그런 나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감히 젊은날 고생은 해봐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린 꼭 아파야 청춘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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