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숲 #24309번째 외침: 2015. 2. 5
1학년 때
한 남자를 만났어요.
외모에 관심 없고 엄마가 사오면
다 고분고분 입는 것 같은 그런 남자요.
처음엔 찌질하다 생각했는데,
하도 저만 좋다고
따라다니길래 받아줬어요.
우리의 집은
두 시간 거리였어요.
다음날 시험이어도, 아파도,
차가 끊길 것 같아도 항상
절 바래다줬어요.
멍청해보여서
너 자신 생각도 좀 하고
그냥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질러봐도,
제가 데려다줘도
또 제 뒤를 따라와서
제 방에 불이 켜지면
그 때서야 집에 갔어요.
처음 싸운 날은 제가 울었는데,
화들짝 놀라더니 자기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구요.
저를 울게 해서 미안하다면서요.
이 때만 운 것도 아니고,
제가 아프기만 해도 울었어요.
이 사람은,
난 괜찮은데 왜 우냐니까
자기는 안 아픈데 제가 아파하니까,
대신 아파줄수 없고
안쓰럽다면서울더라구요.
제가 슬퍼하면
자기도 슬프다고 울고,
제가 행복해하면 자긴 그게
가장 좋다면서 행복해했어요.
달랑 외투 두 벌 가지고
겨울을 나면서도,
제가 지나치면서 예쁘다한 물건은
돈을 아끼고 모아서 기념일에 선물해줬어요.
제가 행복해야
자기도 행복하다면서요.
지나가다 술 취한 행인이
돈 달라고 시비를 건 적도 있는데,
키도 작으면서
제 앞을 막아서더라구요.ㅋㅋㅋㅋ
싸워서 손도 찢어졌는데,
또 제가 놀랐다고
기어코 집에 바래다 주고 갔어요.
제가 알바를 하다
알바비를 떼어먹힌 적도 있었는데,
기어코 자기가 찾아가서
다 받아내줬어요.
자기일마냥 화를 씩씩 내면서요.
이렇게
5년이란 시간을 보냈어요.
지날수록 보고만 있어도
너무 바보같고 답답해서,
계속 고민하다가 이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 먹었어요.
대학원생이라
모아둔 돈이 없어서,
집에서 보태줄 돈도 없어서
머뭇거릴 성격인거,
더 좋은 남자 만나겠다 하면
보내줄 사람인 것도 잘 알아서...
그게 너무 답답해서,
그래서 제가 청혼했어요.
사귄지 7년째 되는 날에,
처음 고백 받은 저희 집 앞에서요.
결혼 하자고,
안하면 평생 키스 안해줄거라 했어요. ㅋㅋㅋ
돈은 내가 벌고 있으니 몸만 오라했더니,
멍하니 있다가 저를 꽉 껴안는데
또 몰래 울고 있는 게 느껴져서
왜 우냐면서 저도 같이
한 시간동안 울었어요. ㅋㅋㅋㅋ
그렇게 저희 오는 3월에 결혼해요!
가진 것 없이 월세부터 시작해도
이 사람이 저의 전재산이나 다름 없기에
앞으로의 생활을 상상하면 웃음만 나오네요.
학교를 떠난지 오래 된
곧 30대를 바라보는 늙은 선배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해 준
학교가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글 보내봅니다!
후배님들, 살다가
이 사람의 행복이 내 행복이고,
이 사람의 슬픔이 내 슬픔이라
느껴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놓치지 말고 함께하세요.
그 어떤 사랑보다 고차원적인,
평생을 거쳐도 만나기 힘들
사랑이라고 제가 자부할게요
모든 후배님들의 사랑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저희도 아름답게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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