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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65063 - 여자친구의 죽음]

by 행복을찾아@ 2021.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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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5일연대숲 #65063번째 외침:

 

 

여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영정사진에 대고 절까지 했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전에 출장을 다녀와서

연락도 잘 안되고

얼굴도 못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이 그냥 출장 기간 같다.

 

집이 너무 조용하고

침대가 너무 크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질식할 것 같다.

 

고통은 모르겠다.

 

지인들은 나한테

괜찮냐고도 물어보지 못하는데,

그냥 여자친구랑 안 만나는 휴일을

보내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여자친구는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고시준비를 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 대리였다.

어제 퇴사했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내가 퇴사를 할 줄은

그것도 여자친구의 죽음 때문에

퇴사를 할 줄은 몰랐다.

 

퇴사하고 돌아오는 길은

그냥 퇴근길이랑 똑같았는데

그 길의 끝에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다시는 끝에

너가 없는 퇴근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

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무것도 안 먹고 3일을 잤다.

 

너는 전화 연결음이랑

진상 고객이 소리치는게

잘 안 잊혀져서

 

밤에도 잠이 안 온다고 하면서도

어떤 날은 밥도 안 먹고

이틀씩 자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별 신경을 안 썼다.

 

아무 생각없이 잠만 미친 듯이 자는 게

우울해서 그런 걸

난 너가 죽어서야 알았다.

 

 

네가 힘들다고 한 거

솔직히 짜증이 많이 났다.

 

너가 밤에 울면서 전화하는 거

일부러 자는 척 안 받은 적 많다.

 

다시 네가 새벽에 전화를 하면

회사 지각 결근 같은거

개나 주라고 하고 들어줄 것 같은데

다시는 네가 나한테

전화를 못 한단다.

 

나는 그걸 장례식을 갔다 와도

믿지를 못해서

밤에도 몇 번이나

네 부재중 전화를 찾아 폰을 뒤진다.

 

며칠쯤 전에

네가 밥을 먹다가 피식 웃으면서

고시고 콜센터고

다 포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이

평생 안 잊혀질 것 같다.

원래 일이랑 시험이 그렇지 뭐.

 

왜인지 알아도

한 번만 더 물어봐 줄걸.

 

아니면 손이라도 잘 잡아 줄걸.

아니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걸.

 

그때 그래 맞아 하면서

웃던 네 얼굴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네 집에는 먼지 쌓인 수저랑

다 쉰 반찬이 담긴 그릇들이 널려 있었단다.

 

밥도 안 먹고 힘들어하는 줄 모르고

나는 홀쭉해진 네가

다이어트하는 줄 알았다.

 

너는 언제부턴가 울지도 않고

우울한 티도 안 냈는데

그게 진짜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던

멍청한 나는 네가 병원 다니는 걸

네 집에서 우울증 약이 나온 걸 보고야 알았다.

 

그 무미건조한 모습이 그냥 다

포기한 모습이란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 나한테

죽음이 가깝게 올 줄 알았으면

교회 같은 것도 다닐 걸 그랬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싫다.

 

내가 죽으면 널 못 볼까봐

그게 너무 무섭다.

 

회사 일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면

너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걱정해 줬는데

 

네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거 하나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네가 죽었나 보다.

 

자살이라고 했는데

나는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까 봐

네가 약을 입에 우겨넣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네가 없는데

회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너랑 내일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놀다가

집 앞까지 데려다줄 것 같다.

 

회사일 때문에

오래 못 만났던 친구들이랑

술을 마실 때 네가 찾아왔었다.

 

공부하다가 웬일로 왔는지 궁금했었는데

해쓱한 너에게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하고

한 번 안아준 게 다였다.

 

그때 홀로 걸어서

집으로 가던 네 뒷모습은 어땠는지

그것도 취한 상태여서 기억 못하는

나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다.

 

 

너희 부모님은

날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난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고

널 보낼 수 있었다.

 

넌 차갑고 편안해 보였다.

 

생전에 네가

그렇게 편안한 얼굴을 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나를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너는 너무 편안해 보였는데

그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네 손을 다시는 못 잡는 게

다시는 널 안지 못하는 게

다시는 네 웃는 얼굴 아니

우는 얼굴이라도 보지 못한다는 게

그냥 문장 같고 현실같지가 않다.

 

사는 거 같지가 않고

꿈꾸는 것 같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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