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5일 연대숲 #65063번째 외침:
여자친구가 죽었다.
며칠 전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영정사진에 대고 절까지 했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전에 출장을 다녀와서
연락도 잘 안되고
얼굴도 못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이 그냥 출장 기간 같다.
집이 너무 조용하고
침대가 너무 크고
휴대폰이 울리지 않아서
질식할 것 같다.
고통은 모르겠다.
지인들은 나한테
괜찮냐고도 물어보지 못하는데,
그냥 여자친구랑 안 만나는 휴일을
보내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여자친구는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고시준비를 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회사 대리였다.
어제 퇴사했다.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기에
내가 퇴사를 할 줄은
그것도 여자친구의 죽음 때문에
퇴사를 할 줄은 몰랐다.
퇴사하고 돌아오는 길은
그냥 퇴근길이랑 똑같았는데
그 길의 끝에
너가 없다는 게 달랐다.
다시는 끝에
너가 없는 퇴근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
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무것도 안 먹고 3일을 잤다.
너는 전화 연결음이랑
진상 고객이 소리치는게
잘 안 잊혀져서
밤에도 잠이 안 온다고 하면서도
어떤 날은 밥도 안 먹고
이틀씩 자곤 했는데,
나는 그게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별 신경을 안 썼다.
아무 생각없이 잠만 미친 듯이 자는 게
우울해서 그런 걸
난 너가 죽어서야 알았다.
네가 힘들다고 한 거
솔직히 짜증이 많이 났다.
너가 밤에 울면서 전화하는 거
일부러 자는 척 안 받은 적 많다.
다시 네가 새벽에 전화를 하면
회사 지각 결근 같은거
개나 주라고 하고 들어줄 것 같은데
다시는 네가 나한테
전화를 못 한단다.
나는 그걸 장례식을 갔다 와도
믿지를 못해서
밤에도 몇 번이나
네 부재중 전화를 찾아 폰을 뒤진다.
며칠쯤 전에
네가 밥을 먹다가 피식 웃으면서
고시고 콜센터고
다 포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한 말이
평생 안 잊혀질 것 같다.
원래 일이랑 시험이 그렇지 뭐.
왜인지 알아도
한 번만 더 물어봐 줄걸.
아니면 손이라도 잘 잡아 줄걸.
아니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걸.
그때 그래 맞아 하면서
웃던 네 얼굴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네 집에는 먼지 쌓인 수저랑
다 쉰 반찬이 담긴 그릇들이 널려 있었단다.
밥도 안 먹고 힘들어하는 줄 모르고
나는 홀쭉해진 네가
다이어트하는 줄 알았다.
너는 언제부턴가 울지도 않고
우울한 티도 안 냈는데
그게 진짜 괜찮아서 그런 줄 알았던
멍청한 나는 네가 병원 다니는 걸
네 집에서 우울증 약이 나온 걸 보고야 알았다.
그 무미건조한 모습이 그냥 다
포기한 모습이란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 나한테
죽음이 가깝게 올 줄 알았으면
교회 같은 것도 다닐 걸 그랬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 싫다.
내가 죽으면 널 못 볼까봐
그게 너무 무섭다.
회사 일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면
너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걱정해 줬는데
네가 죽을 때까지 나는
그거 하나 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네가 죽었나 보다.
자살이라고 했는데
나는 너무 생생하게 느껴질까 봐
네가 약을 입에 우겨넣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네가 없는데
회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너를 뺀 모든 게
이렇게 의미가 없을 줄 알았다면
모든 걸 포기해서라도
너에게 모든 의미를 기울였을 거다.
너랑 내일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놀다가
집 앞까지 데려다줄 것 같다.
회사일 때문에
오래 못 만났던 친구들이랑
술을 마실 때 네가 찾아왔었다.
공부하다가 웬일로 왔는지 궁금했었는데
해쓱한 너에게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하고
한 번 안아준 게 다였다.
그때 홀로 걸어서
집으로 가던 네 뒷모습은 어땠는지
그것도 취한 상태여서 기억 못하는
나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다.
너희 부모님은
날 가족으로 생각했기에
난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고
널 보낼 수 있었다.
넌 차갑고 편안해 보였다.
생전에 네가
그렇게 편안한 얼굴을 했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나를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너는 너무 편안해 보였는데
그게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네 손을 다시는 못 잡는 게
다시는 널 안지 못하는 게
다시는 네 웃는 얼굴 아니
우는 얼굴이라도 보지 못한다는 게
그냥 문장 같고 현실같지가 않다.
사는 거 같지가 않고
꿈꾸는 것 같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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