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짜 재밌었다 그치?
우리 다음에 또 친구들이랑
이렇게 같이 놀자 좋지?
와 진짜 기분 좋다."
남자는 신이 났다.
옆에 있는 여자친구가 이뻐죽을 것 같았고,
기분이 하도 좋아서 지금 같아선
누가 한대 때리고 지나가도
그 사람의 주먹을 걱정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시키는 자리.
아니, 막 자랑하는 자리에서
여자 친구가 정말로 잘해주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
그것도 남자들이 우르르 앉아서는..
"어서오세요 성함이 은지, 은주, 은재?
헷갈리네요. 하도 자주 바뀌니까. 하하."
뭐 이런 싱거운 소리부터
"야 얼굴이 진짜 작다. 혹시 돌려 깎기? 양악?"
뭐 그런 짓궂은 소리를 하는데도
여자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적당히 수줍어하고 또 적당히 잘 받아 넘기며
가끔은 일동을 웃겨주기까지.
그러니 헤어질 때 친구들은
다들 남자에게 그런 말들.
"네 여자친구 진짜 괜찮다. 완전 부럽다.
넌 드디어 찾았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들도 좋아해주는 기쁨.
그리고 남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내꺼라는 기쁨.
남자는 지금 바로
그 감정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발걸음도 힘차게
그리고 목소리도 신나게
여자친구의 손을 덥석 잡으며.
"자 이제 우리 어디가서 커피마실까?
아니다. 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먹을까?
아니면 우리 한 잔 더 할까?
너 아까 술은 거의 안 마셨잖아. 그치?"
그런데 돌아본 여자의 표정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씩씩하던 아까와는 달리
힘 없고 겨우 웃고 있는 얼굴.
남자는 좀 놀라서 물었다.
"어? 너 얼굴이 왜그래 괜찮아?
야 너 손은 왜 그렇게 차가워. 어디 안좋아?"
남자의 호들갑스러운 걱정에
여자는 최대한 웃어 보이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그냥 좀 체했나봐.
아까 너무 긴장해가지고..
그래도 다 끝나고 체해서 다행이다.
나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봐.
가서 약 먹고 좀 누워야겠다."
쿨한 척 했지만
씩씩한 척 했지만
사실 나는 당신에게
더 멋진 애인이 되고 싶어서
애를 많이 쓰고 삽니다.
때론 견딜 수 없는 어색함도 참고
한심한 농담도 참고
못 마시는 술도 넙죽 받아 마시고.
뒤져봐도 뻔한 옷장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고
가난한 지갑을 탈탈 털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들도 좋아해주는 기쁨.
그리고 남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내꺼라는 기쁨.
당신에게
그런 기쁨을 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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