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51번째포효
3월, 날씨가 풀리지 않았다면
4월쯤 당신과 한강을 걷고 싶어요.
밤이 되면 꽤 쌀쌀할테니
가벼운 가디건이나 자켓을 챙기고
과자 몇 개, 캔맥주 여러 개를 들고
여의나루역에 내리고 싶어요.
한강을 따라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테니 그 날은 단화나
운동화를 신고 나오는게 좋지 않을까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아마
나는 깔끔한 로퍼를 신고 올 것 같긴 해요.
밤이 돼서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지고
누군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행복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속삭이겠죠.
역에서 내려 한강을 바라보면
뭔가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이 차오르지 않나요.
갑자기 기계에서 폭신한 솜사탕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탁 트인 강을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가까운 서울 안에서 당신과 이렇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한 몫 했을 것 같아요.
정신없이 날아오는 전단지를
정신없이 챙기며,
어느새 내가 전단지를 돌리는 사람처럼
두 손 가득 전단지를 들고 있겠죠.
적당한 잔디밭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노래를 틀어요.
김댕, 태리의 지금뭐해 라는 노래는
내가 먼저 틀게요.
한강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어요.
풋풋하게 썸을 타는 남녀의 설렘이,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해
손을 잡아도 될까 고민하는 사람의 떨림이,
만난 지 꽤 지난 커플들의 여유와
편안함 같은 것들이요.
나는 당신과 함께
뭘 흘려 보낼까요.
약간 쌀쌀하네 라며
몸을 움츠린 당신에게
내 가디건을 덮어주며
난 하나도 안 춥다고 했던 거짓말은
들키기 전에 얼른
떠내려 보내는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마냥
걷기는 힘들겠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겠죠.
우리 그 때가 되면
같이 한강을 걸어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감탄도 같이 해보고,
버스킹 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나지막히 같이 따라 불러보기도 해요.
캔맥주 몇 캔에
볼이 빨개져도 괜찮아요.
조명들이 몰래 가려줄테니까.
작년 봄과 달라진 건
당신과 나의 사이인데,
한강은 달라지지 않았겠죠.
한 번만 더 같이
걸어줄 수 있나요.
강에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에,
잠깐 한 순간만 마음이 달라져도 좋아요.
속아 넘어간 거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그 감정에 빠져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 손을 잡아줘도 좋아요.
그러니까 딱 한 번만,
한 번만 같이 걸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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