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19 오후 9:33:28, 연대숲 #58437번째 외침:
나 사실 지하철 타는 거
정말 싫어해.
차창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싫고,
만원지하철에서 한껏 바쁜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밀쳐지는 것도 싫고,
어렸을 때 큰 소리를 무서워했는데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
지하철이 들어올 때 나던 소리에
귀를 꼭 막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그것도 싫어.
대신 나는 이어폰을 꽂고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게
너무 좋아서 버스를 타는 게
지하철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곳을 가도,
전광판에 뜬 예상 도착시간이
터무니없이 길어도, 차가 아무리 막혀도,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언제나 버스를 타.
그러니까
눈 내리던 그 날,
눈이 와서 아무래도
찻길은 막힐 것 같다느니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은 다 핑계였고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는 내가
가까워 오는 버스정거장을 보며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한 대사였어.
그냥 역까지 같이 걸어가는 그 길이,
같이 지하철 타고 가는
몇 안되는 정거장만큼의 시간이,
시시콜콜하지만
나는 한 마디도 잊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꿈처럼 기뻐서 그랬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야.
그냥 그만큼의 행운이
나한테도 왔다는 게 너무 좋았어.
2호선 반 바퀴를 비잉 둘러서
버스보다도 한참을 더 걸려 집에 갈 때,
지하철을 탄 걸
후회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오빠는 페이스북을 많이 하지 않으니까,
이 글을 못 봤으면 좋겠어.
혹시 이 글을 읽어도 날 떠올리지 못하고
'글 쓴 애가 짝사랑 하나 보네' 하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쳤으면 좋겠어.
짝사랑 노래로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다니는 주제에,
오빠가 제발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고 바랐어.
내 마음이 짐이 될 바엔
나 혼자 끌어안고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그냥
확 들켜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날은 나도 내 마음이 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공감되는 노래를 찾아 들었어.
예를 들면 이하이의 희망고문이나
윤종신의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 같은,
그런 노래들.
나 이제 더 이상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
장장 9개월에 걸친 짝사랑은
얼마 전에 끝냈거든.
근데 있지,
누군가를 떠올리며 듣던 노래는
그 사람에게 주는 노래가 되더라.
방금 랜덤재생으로 노래를 틀어 둔 핸드폰에서
희망고문이 흘러나와서,
갑자기 오빠 생각이 나기에
예전에 써 뒀던 이 글을 대숲에 보내려고 해.
사실은 처음 본 순간부터
언젠가 오빠를 좋아하게 될까봐
불안했다는 고백 아닌 고백과 함께.
좋아했어,
오빠.
사실 나는
오빠랑 눈이 마주칠 때마다
녹아버리는 눈사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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