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지난 금요일이었다.
남자의 후배가 커플이 됐다며
자기 애인을 이 두 사람에게 소개했을 때
남자는 인사치례로 하지만 약간의
진심도 섞어 그렇게 말했다.
"되게 예쁘시네요, 키도 되게 크시고."
그리곤 옆에 있는
자기 여자친구를 가리키며
"전 아직도 가끔 옆에 보면
얘가 없는 것 같아 놀란다니깐요.
어찌나 키가 작은지. 에이 땅꼬마."
그리곤 또 한 번
바보같이 하하하 웃기까지.
그 순간
여자의 머리엔 뿔이 돋았다.
남자가 평소에 땅꼬마라고 부를 땐
여자도 별로 싫지 않았다.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보호받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늘씬한 다른 여자를 앞에 세워놓고
자기를 땅꼬마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그날 이후 뿔 달린 여자는 결코
곱게 말하지 않았다.
남자가 뭐라고 말을 하기라도 하면
예를 들어 '빨리 좀 걷자 영화 시작하겠다'
그러면 여자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였다.
'키가 작아서 빨리 못 걷나보지
그러게 왜, 키 큰 여자 만나지'
귀여운 투정도 하루 이틀.
여자의 마음은 풀릴 줄 모르고
남자도 조금씩 짜증이 나려던 오늘 저녁.
여자는 카페에 30분쯤 늦게 들어서자
남자는 그야말로 벌컥 화를 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전화 왜 안 받아"
아까 분명히 30분쯤 늦을 거라 했고
일 때문에 통화를 하느라
남자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여자.
남자의 난데 없는 분노에
여자도 화가 나서는
또 한 번 '키가 작아서 늦었나보지'
그렇게 못되게 말을 하려는데..
그때 남자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러는 거였다.
"아.. 진짜 깜짝 놀랐네."
이상해진 여자가 물었다.
"뭐가? 왜 그래?"
"아니. 아까 이 근처에서
앰뷸런스 소리나고 그랬거든.
그러고 나서 여기 앉았는데
어떤 여자 두 명이 들어오면서
한 명이 그러는 거야."
"아까 그 여자애 많이 다친 것 같다고,
근데 그러니까 다른 한 명이
애는 아니고 키작은 어른같던데. 그러는거야.
난 또 그래서 땅꼬마가 넌가 싶어가지고."
키가 작은
여자친구의 정수리를 꾹꾹 누르며..
"야, 어제 뉴스 봤냐? 네가 세상에서 제일 작대."
뽈록 나온 남자친구의 배를 슬슬 만지며
"자기야 이거 다 뭐야?
TV에 나오는 남자들은 이런거 없던데?"
그리곤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잡고
걸어가는 길.
그냥 너라서 좋은 거.
그래도 너만 좋은 거.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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